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반영하며 흘러온 전통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동시대 어떻게 다른 것들과 관계 맺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오는 5월5일까지 무안군오승우미술관에서 펼쳐지는 올해 첫 기획전 ‘전통, 잇다 가로지르다’ 전시다.

1부 ‘천년의 감성’에서는 서남해안의 독특한 지형과 문화로부터 태동한 지역작가들의 한국화와 도예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김두석의 작업은 도조·석조에서 평면으로, 3차원 도자에서 2차원 회화로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 간다.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듯 그의 손을 거쳐 평면 회화로 다시 태어난 도자기 조각들에는 작가가 보내는 투박한 신호이자 고달픈 삶에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천일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남도의 아름다운 산천 풍경을 화폭에 표현했다. 작가는 현장을 찾고, 산을 오르며 작품의 대상을 세세히 관찰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마침내 본질에 다가서면 한 폭의 진경산수가 펼쳐진다. 이렇게 탄생한 진경산수에는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이 표현된다.

박정규는 무유소성 기법을 통해 무유 백자 달항아리를 제작한다. 가마 속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소나무 재가 도자기 위에 내려앉아 고온에서 녹으면서 자연적으로 유리질화된다. 이러한 자연유를 입혀 탄생한 도자가 무유 달항아리이다.

그는 자연적인 선을 추구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선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자리한다. 37년이라는 도예 경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에는 지역에 대한 애정, 도예에 대한 애착이 가득하다.

2부 ‘그림이 된 문자 - 문자도’에서는 문자·그림적 요소 등 여러 기호적 의미가 중첩된 문자도 형식을 차용해 다채롭게 전개되는 현대미술을 보여준다.

박수경은 동양화의 먹과 한지로 남도의 먹거리와 문자를 결합한다. 그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연해의 수족을 취급한 어보인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재치 있고 친숙한 언어를 사용해 전라도의 낙지와 생선들로 화면을 채웠다.

작가는 ‘식사’라는 소재를 문자와 결합해 실감나는 음식들을 표현한다. ‘魚’라는 문자로 구성된 밥상 위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과 이제 막 잡은 듯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이 보인다. 남도의 생태, 문화, 환경 등 지역 특색을 관찰해 담아온 작가의 작품에서는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손동현은 전통 한국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탐구한다. 그는 잡지의 전성시대라 불리는 1990년대를 지나오며 다양한 음악, 영화 잡지 등 대중문화에 소재를 두며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작가는 ‘자연’이라는 전통 소재의 틀을 벗어나 문자를 통해 새로운 인물화를 보여준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분야 속 인물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상상의 인물을 문자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문자도를 재창조한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문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며 여느 외국 히어로물에 나올 법한 인물상들을 보여준다. 상형문자로 보이는 것들이 갑옷, 얼굴 등 형태를 만들어내며 신선함을 자아낸다.

이진경은 한국적인 것, 친숙한 것, 자연에서 얻는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소재로 삼아 그림과 손글씨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시장이나 거리에서 발견한 종이박스 위 글씨에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투박하고 소소한 그녀의 세계가 글씨체에서 드러난다. 둥그런 그녀의 글씨에서 특유의 밝은 기운과 고유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친숙함 또한 느껴진다. 작가의 작품에서 말은 곧 삶이고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간 것들 혹은 잊혀진 것들은 문자로 다시 한번 기억되며 새로운 의미로 새겨진다.

홍인숙은 일상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일기 형태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한글 단어, 꽃과 기와집, 인물 등이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억의 순정만화에 나오는 인물의 모습, 어린아이의 글씨체 등에서 보이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리는 동심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림으로 그린 문자를 읽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기도 하며 글과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위로부터 박수경作 ‘병어 한상+福 보자기’, 손동현作 ‘I.O.P.02’, 박정규作 ‘달(몽탄의달1)’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