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무서운 영화 좋아하세요?”

“아니, 엄마 취향은 공포영화가 아니고 훈훈한 영화인데, 왜?”

“그럼 맞아요, 나오는 배우가 훈훈해요. 영화 ‘파묘’ 같이 보러 갈까요?”

“파묘?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함께 영화보자.”

삼대가 한 영화를 보게 된 날, 우리는 목포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단골 식당으로 유명한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파묘’를 봤다.

영화 ‘파묘’는 의뢰인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LA에 사는 ‘밑도 끝도 없는 부자’ 교포 집안에 대물림되는 기이한 병을 해결하기 위해 의뢰인 할아버지의 묘를 파묘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최고의 풍수사, 대통령을 염하는 장의사, 신기 작렬하는 무속인들이 등장하는 오컬트 영화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무당의 주술영화도 아니고, 묘를 잘못 건드려서 화를 입는 귀신영화도 아니었다. 섬뜩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임진왜란부터 침략한 일제가 친일파들의 정신에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아내는 상징적인 영화였다.

주인공 풍수사 최민식의 극 중 이름이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후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김상덕 선생이고,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의 이름 역시 독립운동가 이화림 선생이다. 장재현 감독은 여자 주인공을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 애국단과 조선의용군으로 활약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작명했다. 게다가 매력적인 젊은 법사 이도현의 극 중 이름은 한인 애국단 윤봉길 의사가 아닌가!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빠져서 이 연관성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김상덕의 차 번호가 ‘0815’, 이화림의 차 번호는 ‘0301’, 광복절과 삼일절이고 장의차는 ‘1945’다. 장재현 감독은 캐릭터와 장소, 이름, 소품에까지 랩핑해서 우리의 무의식이 되게 장치할 만큼 간절했고 치밀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오컬트 영화 속에서 진정한 해방을 그리고 있었다. 귀신은 무섭지 않다. 무서운 것은 세뇌된 사악한 이념이다.

“아버지, 영화 무서웠어요?”

“귀신이 뭐가 무섭냐? 우리나라 명산의 정상에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뽑아서 박살 내는 영화구만!” 핵심을 간파하신 아버지는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전쟁이라고 하셨다.

“6·25전쟁과 이승만 대통령 시절이 배고프고 제일 무서웠지.”

아무리 무서운 영화도 그 당시 현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 한마디 했다고 서로 죽이는 시절이었고, 그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파묘’에서 보여주는 ‘쇠말뚝’이 얼마나 우리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를 보여주는 일들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에게 좌파 운운하는 이념의 프레임을 씌우고, 삼일절에 대통령이 일본 우익들이 하는 말을 받아쓰듯이 하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앞서서 대응해야 할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선 안된다”는 등 왜곡된 역사 인식의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다. 사악한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하는 영화까지…. 이런 것들이 영화 속 괴물보다 더 끔찍한 이 시대의 쇠말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