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폐광된 전남 화순탄광 뒷산 비탈진 곳에는 박경환 선적비가 세워져 있다. 1956년 재향군인회(제대장병보도회)가 건립한 것으로 박경환은 6·25 전쟁 중 탄광을 수호하는데 앞장 선 인물로 추정된다.

또한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에는 지역사회에 귀감이 된 인물을 기리는 3-4기의 공덕비가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전후에 세워진 것들이며, 장학사업과 구휼사업 등 오블리스 노블리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먼저 가장 번화한 중앙로 비아농협 인근에는 한 평 남짓한 자리에 화강암으로 조성된 아담한 비각이 있다. 돌 담장으로 둘러쳐진 비각 안에는 참봉 박원삼의 공덕을 기리는 시혜불망비(공덕비)가 서 있다. 박원삼은 구한말 대지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호세(戶稅)를 대납해주고 지금의 비아장터와 피난민촌 땅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행이 빈번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눈에 띄지만 안내문이 없어 공덕비의 주인공에 대해 아는 주민은 거의 없다. 문이 굳게 잠긴 채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히 자라 시야를 가리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일제강점기 비아면장을 지낸 손권주 공덕기념비가 장성에서 비아동으로 들어오는 도로 한 편에 세워져 있다. 비문이 희미해서 판독이 어려워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으나 기묘년(1939년 추정)에 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새겨져 있다. 이 비석 역시 잡초가 뒤덮인 채 쓸쓸한 모습으로 서 있다.

마지막으로 호반아파트 입구 공터에 세워진 김경렬(1891-1947) 공덕비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에 걸쳐 20여 년간 비아면장을 지낸 인물로 지역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재임 중 가뭄 해소를 위해 저수지 7개소를 설치하는 등 수리시설 확충에 힘 썼다. 그리고 해방 후 비아중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기금 전액을 조성하는 등 육영사업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주민의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김경렬 공덕비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땅 주인이 비석 이전을 요구하자 마땅히 세울 곳을 찾지 못한 후손들이 철거 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역사회에 귀감이 된 인물을 추앙하기 위해 세워진 공덕비가 도시개발과 도로개설 등으로 훼손되고 망실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광주 관내 농촌지역에는 아직도 많은 공덕비가 산재해 있으나 실태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공덕비는 옛 역사와 문화를 생생히 전해주는 금석문으로 그 시대의 증표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어 향토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이들 공덕비가 문화재가 아닌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연구조사마저 이뤄지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전남 화순군은 1980년 이전에 세워진 비석 등 금석문 전반에 대해 일제조사를 실시해 비문 탑본과 해설을 곁들인 자료집 ‘화순의 금석문 탑본자료 집성’(2019년)을 발간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변에 방치된 오래된 고비(古碑)의 비문, 바위에 새겨진 글자 한 마디가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계승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공덕비는 그 시대를 증거하는 동시에 지역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비등록 문화재이더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때 마침 광주시는 9월부터 미래 창조적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근현대문화유산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해 멸실 및 훼손으로부터 보호하는 포괄적 관리방안을 새롭게 마련한다는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공덕비 등 금석문이야말로 당대의 시대상과 공동체의 특징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미래 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적극적인 보호의 대상이 돼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공덕비 등 근·현대 시기에 세워진 금석문에 대해 전수조사와 더불어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