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가 데뷔 58년 만에 은퇴를 시사했다. 최근 자신이 쓴 편지에서 “고마웠습니다! … (중략) … 한발 또 한발 걸어온 길이 반백 년을 훌쩍 넘어 오늘까지 왔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나훈아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요계도, 국민도 충격적 파장이 매우 크다. 히트곡이 무려 120여 곡으로 국내 최다이고, 200여 장의 앨범과 800여 자작곡을 포함해 2천600여 곡을 발표한 ‘가황(歌皇)’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나훈아에게 그토록 빠져있을까.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훈아만이 갖는 독특한 페르소나가 그의 음악과 공연 스타일을 관통하고 있는 점이다.

나훈아의 음악과 퍼포먼스 스타일의 중요한 부분은 스토리텔링에서 찾을 수 있다. 스토리텔러로서의 나훈아의 페르소나는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노래 중 많은 부분이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narrative)를 전달했으며,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끌어내거나 가슴 아픈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음악 평론적 시각에 불과하다. 그가 60여 년 동안 무대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인간 나훈아’의 진정성이다. 그는 대중가수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와 예술적 세계관,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다.

나훈아와 관련한 많은 일화가 그것을 잘 대변해준다.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당시 여당으로부터 공천을 제의받았다. 하지만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난 가수가 천직이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정치인들이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지 않고, 자당의 의석 늘리기에 혈안이 된 현실을 마뜩잖게 여긴 것이다.

특히 1996년 9월26일 일본 오사카 공연 때의 일이다. 공연 마무리로 2천여 관중과 함께 ‘쾌지나 칭칭 나네’를 합창하면서, 즉흥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란 가사를 넣어서 불렀다. 그것도 일본 한복판에서 말이다.

또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공연을 제의받았을 때다. 당시 외국 가수들은 내한 공연을 할 때 과한 조건을 제시하는 반면, 한국 가수들은 미국을 구경하러 가는 기분으로 공연하던 게 너무나도 자존심 상했던 모양이다. 나훈아는 미국공연을 거절하려는 마음으로 굉장히 허세(?)를 부려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내 방까지 융단을 깔고, 둘째 방은 100평 이상, 셋째 전용 헬기 준비, 넷째 스텝 50명이 탈 리무진을 대고, 40명의 보디가드를 붙이라고 조건을 단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에이전시에서 그가 제시한 모든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여 공연은 성사됐다. 이를 계기로 나훈아는 한국 가수로서 자존심과 품격을 지켜냈고, 나아가 ‘문화 대한민국’의 국격을 드높이는 데에 공헌했다.

본명 최홍기 대신 나훈아로 살아온 그에게 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고백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 고백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그렇다. 나훈아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고뇌와 희망, 꿈을 음악으로 풀어내며 대중과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 가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기록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