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스며, 애틋함을 감출 수 없는 시의 마음’

오랜 기억 속 가라앉아 있던 삶의 흔적들을 섬세한 언어로 담아낸 시집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한 황형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시인의일요일刊)를 펴냈다.

그는 첫 시집 ‘바람의 겨를’(2013)에서 식물성의 세계를 통해 사유의 깊이와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주목 받았으며, 두 번째 시집 ‘사이도 좋게 딱’에서는 인간 삶과 자연의 연결 지점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 시편들로 밀도 있는 서정시의 세계를 보여줬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일상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흔적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피고 사유한 기록이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정서를 재치 있게 반영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숨은 인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

그는 시 곳곳에서 정제된 목소리와 살가운 언어적 생동감을 보여준다. 이는 시적 대상에 대한 애잔한 사랑과 관심에서 발원한 것으로, 그만의 따뜻한 공감 능력과 감수성을 통해 시 읽기의 감동을 준다.

시 ‘뜬구름’을 보면 이같은 시인의 성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평생 떠돌 수 있는/ 가벼운 무게를 가졌지만’ ‘우레와 번개 아무리 법석거려도/본디 모습으로’ 돌아와서 ‘산그림자 번지는 고요를’ 익힌다. 끝내는 ‘눈도 비도 품어서’(시 ‘뜬구름’ 일부) 나아가고자 한다.

또 이번 시집은 5·18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과 같은 비극의 현대사와 반지하 방에서 고독사한 사건까지 역사에서부터 주변의 일상에 이르기까지를 간절하고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소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시인으로서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그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한다.

황형철 시인

제주 사투리나 섬만의 관습 같은 게 눈에 띄는데, 특유의 역동성과 생동감으로 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시를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제주라는 장소성은 물론 특정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서정시의 기본 원리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의 미덕이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시가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보편성을 가지며 세상을 향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시적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을 생의 의지와 견고하게 결합함으로써 독자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낮고 겸손한 미덕으로 시의 마음을 열어 놓으며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시편에는 시인의 품격이 묻어나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황형철은 남다른 기억에 대해 반듯한 예의를 갖춘 시인이다. 일상을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꾀하며 그 심미적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경험은 사물로 원심적 확장을 했다가 다시 스스로에게 귀환하는 구심적 과정을 밟아 간다”며 “곡진한 서정이 담긴 그의 시를 통해 자유나 고요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이 시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