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感(유감)[2] - 아정 이덕무
親老那能辭鄙事 才踈端合役微躬(친노나능사비사 재소단합역미궁)
談非景略何捫虱 姑把溫顔對社翁(담비경략하문슬 고파온안대사옹)
부모님 늙었으니 천한일 마다하랴
재주가 모자라니 육체일 어울리는데
문질러 이를 잡으랴 노인네 마주해야지.

이덕무가 책읽기로 유명한 사실을 알았던 정조는 이덕무가 서얼(庶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규장각을 설치하며 그를 검서관으로 발탁했다. 평생 책에 굶주렸던 이덕무에게 규장각은 지상 천국이었으리. 여기서 그는 조선후기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청장관전서’를 펴냈는데 박람강기한 그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책은 없었겠다. ‘부모님이 늙으셨으니 천한 일을 마다하랴, 재주가 모자라니 육체노동하기 어울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온화한 그 낯빛으로 촌 노인네를 마주해야지’(有感)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14년간 규장각에 근무하며 규장각신을 비롯한 많은 국내 학자들과 함께 규장각의 도서 편찬에도 적극 참여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도서집성’, ‘국조보감’, ‘규장각지’ 등 많은 서적의 정리와 교감에 종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부모님이 늙으셨으니 천한 일을 마다하랴 / 재주가 모자라니 육체노동하기 어울린다 // 경략(景略)의 달변이 없으니 이(虱)를 문질러 잡으랴만 / 온화한 그 낯빛으로 촌 노인네를 마주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어떤 느낌이 있어(2)’로 번역된다. 전구에는 ‘농부의 별은 새벽녘 공중에서 반짝이고 / 안개 뚫고 서리 맞으며 동편 논으로 나간다 // 시고 짠 세상맛은 긴 가난 탓에 실컷 맛보았고 / 냉대와 환대는 오랜 객지 생활에서 뼈저리게 겪었지’라고 했다. 충청도 천안에 소유한 논에서 그는 해마다 벼 열 섬씩 수확해 생활을 꾸렸다.

시인은 몸소 체험하는 일을 제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체험을 양식으로 삼아 되돌림이라는 영상으로 풍성한 씨앗을 만들어 시적인 얼개로 엮었다. 부모님 늙으셨으니 천한 일인들 마다하랴, 재주 모자라니 육체노동하기가 딱 어울린다고 했다. 농사꾼으로 타고났으니 그 일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대목이리라.

화자는 열심히 농사에 전념하니 촌 어르신들이 좋아하더라고 했다. 경략(景略)의 달변 없으니 이(虱)를 문질러 잡으랴 / 온화한 낯빛으로 촌 노인네 마주한다고 했다. 위의 ‘경략’은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왕맹(王猛)의 자(字)인 바, 그는 남과 대화하면서 이를 문질러 죽이는 등 방약무인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낯이 선 농부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親老: 부모님이 늙으시다. 那能: 어찌 능히. 辭鄙事: 천한 일을 말하다. 才踈: 재주가 모자라다. 端合: 어울리다. 役微躬: 육체노동하기. // 談非: 말하지 않다. 景略: 경략. 중국 동진의 왕맹의 자. 何捫虱: 어찌 이를 어루만지랴. 姑把: 노인을 위로하다. 溫顔: 온화한 얼굴. 對社翁: 촌 노인네 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