果寓卽事(과우즉사) / 추사 김정희
庭畔桃花泣 胡爲細雨中(정반도화읍 호위세우중)
主人沈病久 不敢笑春風(주인침병구 불감소춘풍)
뜨락에 복사꽃이 눈물을 흘리는데
어찌해 가랑비 속에서 울고 있는지
주인은 병든 지 오래 웃지를 못한다오.

수도권이란 말이 있듯이, 과천종합청사가 있었듯이 과천은 한양의 손발 역할을 톡톡하게 했던 모양이다. 지도가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한양의 수족(手足)이 되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려니. 당대의 큰 문필가였던 시인도 과천 집에 살면서 봄의 소묘 속에 자연 속이란 방점 찍기에 무척 바빴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뜨락에선 복사꽃이 조용하게 눈물을 흘릴 때에, 어찌해 가랑비 속에서만 그렇게들 울고 있느냐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봄바람에도 감히 마음 놓고 웃지를 못한다오(果寓卽事)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68-18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서화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백이 뛰어나서 일찍이 북학파의 일인자인 박제가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가 됐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학문 방향은 청나라의 고증학 쪽으로 기울어졌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뜨락에서 복사꽃이 조용하게 눈물을 저리 흘릴 때에 / 어찌하여 가랑비 속에서만 그렇게들 울고 있을까 // 주인장은 이미 병이 든 지가 오래인지라 / 나는 봄바람에게도 감히 웃지를 못한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경기도 과천 집에서’로 번역된다. 시인이 1791년 여름 사간원(司諫院)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세검정을 유람하고 지은 기문(記文)의 대략이 있어 전한다.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은 장마철에 물이 불 때면 세검정으로 물굽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천둥 소리가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시인의 시상은 큰 시인임을 스스로가 자처하며 시적인 얼개 속의 시낭(詩囊)은 마냥 넉넉해 보인다. 뜨락에서 복사꽃이 조용하게 눈물을 흘릴 때에, 어찌 가랑비 속에서만 그렇게 울고 있는가라는 자시 푸념을 한다. 복사꽃이 조용하게 눈물을 흘린다거나 가랑비 속에서 울고 있다는 시적의 표현은 그 멋을 더하고 있다.

화자는 이미 이러한 일을 거둬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겠다는 시적 얼개는 늘 충분해 보인 모습이다. ‘주인이 이미 병이 든 지 오래인지라 / 나는 봄바람에도 감히 웃지를 못한다’고 했다. 얼마 뒤에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골짜기의 물도 잔잔해졌음을 알게 한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경치가 천태만상으로 변화했다고도 한다. 서로를 베개 삼아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庭畔: 뜰 가. 桃花泣: 복숭아꽃이 울고 있다. 胡: 어찌. 차마. 爲: ～이 되다. 細雨中: 가는 비 가운데에. 세우가 내리는 가운데. // 主人: 주인. 주인장. 沈病久: 오랜 병으로 누워있다. 지병으로 누워있다. 不敢: 감히 ～하지 못하다. 笑: 웃다. 春風: 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