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당 창당’ 가능성을 놓고 정치권이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표가 광주지역 7개 신문사와 합동 인터뷰를 갖고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지난 6월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강연 등을 하면서 많은 국민들을 만났다. 주로 무슨 말을 들었나.

-경제가 정말 어렵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식비를 포함한 생활물가가 폭등해 많은 가정에서 반찬 수를 줄이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이 어렵고 특히 호남을 포함한 지방 청년들은 지역에서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자영업자들은 부채에 허리가 휘고, 열심히 일해도 빚이 늘어만 간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그런 국민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극한투쟁으로만 치달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국민들은 묻고 계신다.

▲요즘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발언 수위도 과거와 달라졌다. 이유가 궁금하다.

-나라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기 어려웠다. 6월 말 귀국해 5개월 이상 침묵했다. 기존 정당들과 정부가 잘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는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국가의 위기 앞에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은 경험과 식견 모든 것을 쏟아 국가 위기 극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심정이다.

▲윤석열 정부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이대로 가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최악은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정체의 기간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퇴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특히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대통령 자신이 경험과 준비가 부족한 데다, 균형감과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을 기용해 국정이 어지럽다. 경제는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졌는데도 대통령이 대책 회의를 열었다는 얘기 한 번도 못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 0%대까지 추락할지 모른다. 정치 분야를 보면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데 이념 과잉으로 쓸데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자유를 포함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외국 기관이 평가했다. 외교적으로는 한·미·일 관계에만 치중해 한·중 관계와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불안이 커졌다.

▲새해는 총선이 있고, 미국은 대선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진행 중이고,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하다. 내년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보는가.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훨씬 더 불안해질 것이다. 미·중 경쟁과 갈등은 더 심해지고, 남·북 관계에서도 긴장이 더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는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특히 중국 경제가 감속하고 있는 데다, 한·중 관계까지 나쁘다 보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중국발 타격이 가해질 것이다. 내년 연말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미국에 권력 공백이 생긴다. 그것이 한반도 또는 대만 해협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보다는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2024년 새해 대한민국이 마주할 위협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에 5대 위기가 있다. 첫째 팬데믹 위기, 둘째 디지털 전환 위기, 셋째 기후변화 위기, 넷째 에너지 전환 위기, 다섯째 인구 위기다. 특히 인구 감소는 우리가 세계 최악이다. 경제의 위축도, 고령화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다. 이런 국가 현실에 대해 해법을 찾으러 몰두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말까 싶은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논의는 보이지 않고 정치가 극한 투쟁으로 날을 새고 있다. 이대로는 대한민국이 허물어질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저는 갖고 있다.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위기와 미래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야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기 진영만 바라보며 힘 자랑을 하고 있다. 합법의 옷을 입은 힘 자랑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도 국가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국민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태가 계속된다. 이래서는 국가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여야가 끝까지 대화해 서로 불만스럽더라도 합의를 이루는 것이 국민께 이익이 된다. 그것이 정치의 예술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데, 민주당 지지도가 안 오르는 이유는 뭘까.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법적 문제에 걸린 사람이 너무 많다. 잊어버릴 만하면 막말이 나온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국민이 질리는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깨끗이 사과하고 빨리 그 문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도리어 뭉개거나 두둔한다. 그런 것이 누적되며 당 전체가 국민 불신과 무관심의 늪에 빠진다. 민주당은 과거에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내 다양성과 민주주의라는 면역 체계가 기능하며 여러 문제들을 걸러내고 건강을 회복해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면역 체계가 고장났다. 참담하다.

▲민주당이 병립형 비례대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권 견제를 위해 이겨야 하니 약속 어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어떤가.

-비례 몇 석 얻는 이익보다, 신뢰를 잃어 전국 지역에서 받는 손해가 더 클 수 있다. 민주당은 수십 년 동안 다당제를 지향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당제를 배격하는 쪽으로 변했다. 그것은 민주당의 정체성 위반이고 오만이다. 국민들은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둘 중 한 명을 고르라는 시험지를 받았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도 똑같은 문제를 받아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30%는 그 시험지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국민께 다른 선택지를 드려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구에서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에서도 다당제가 나오기 쉬운 현재의 준연동제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팬덤이 갈수록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적대적·폭력적 행동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같은 당에서 그런 식으로 증오하고 저주하고 배제하면 뭐가 남겠는가. 그동안 악성 팬덤 정치를 끊으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치인, 정당과 팬덤 사이에도 안전거리, 적정거리가 필요하다.

▲내년 총선 전망은.

-국민의힘은 과반이 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신당의 성적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직감한다.

▲다양한 신당 추진 움직임이 있다. 신당 창당하나.

-지금 대한민국은 내외의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그 가운데 핵심은 정치 위기다. 신뢰받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이 극한투쟁만 계속하며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국민 사이에 적대감만 키운다. 그런 최악의 정치 양극화를 깨고 국가와 국민을 먼저 걱정하며 돕는 생산의 정치가 당장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성장했고 민주당의 자랑스러운 자산을 누구보다도 잘 간직하고 있다. 저라도 나서서 떳떳하고 유능한 민주당을 복원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려 한다. 현재의 정치에 절망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국민, 민주당의 전통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께 길동무가 돼 드리겠다.

▲지금 가장 필요한 시대적 소명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압축하면 ‘역량 국가’와 ‘책임 정치’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눈앞의 위기를 직시하고 극복할 역량이 너무 약해졌다. 정치는 책임 의식을 잃었다. 무능 국가, 무책임 정치가 대한민국을 허물고 있다. 국가와 정부의 역량을 다시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 일에 몰두할 사람들이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정치에 임해야 한다. 저는 그 일에 함께 하려 한다.

▲외부인에게 너그럽고 내부인에게 가혹하다는 평이 있다. 전남지사 시절 부하들을 너무 무섭게 다뤘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나.

-직원들을 힘들게 한 것은 저의 결함이다. 정책을 만들거나 국민께 설명할 때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해서 저를 돕는 분들을 힘들게 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가급적 그날 술이라도 한잔 나누며 풀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적도 많았다. 지금도 반성하고 후회한다.

/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