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대 칼럼]출판기념회의 유행과 불공정의 정치
시사평론가
2023. 11. 30(목) 19:47 가+가-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소식이 잇달아 들린다. 책을 많이 읽는 계절이라서 그에 부응해 작가들이 너도나도 평소 준비해 오던 비장의 책을 출판하고 있는 것인가? 좀 이상하기는 하다. 출판기념회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치인이거나 정치 지망생들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얼마나 시인 묵객들이 많길래 때가 되면 이렇게 책 쓰기에 열광하며 출판기념회 열풍에 휩싸이는 것인가?

사실 이 계절에 출판기념회가 홍수를 이루는 것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갖는 이상한 현상의 비밀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정치관련 법들에 숨어 있다. 우리 정치를 규율하는 대표적인 법률에는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 3법이 있다. 이 법들의 취지를 보면 정치신인들이 정치적 후원을 받거나,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자금 조달의 역사를 보자. 초창기에는 사적인 부담이 당연시됐다.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출마한 것으로 보아 선거비용의 자부담을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폐해를 낳았다. 선거에 출마해 요행히 당선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대접받았지만, 낙선이라도 할라치면 전답과 가옥을 날리고 패가망신하기 일쑤였다. 온갖 부정한 돈을 끌어들여 공직선거를 금권정치의 난장판으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선거공영제’라는 화두가 대두됐다. 선거비용을 사적인 부담에만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부담하는 체계로의 전환이 요구된 것이다. 지금의 소위 ‘선거공영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만들어진 체계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현행법상의 선거공영제는 또 다른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로 인한 기득권의 횡포다. 예컨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이 경쟁하는 경우 현역 의원은 합법적인 후원회를 통해 많은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반면에 정치신인은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다. 매우 불공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후원금이 절실한 정치신인들이 현행법의 틈새를 연구한 끝에 나온 방안이 바로 문제의 출판기념회 개최인 것이다. 현역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공직에 대한 포부가 있는 후보자라면 당연히 합법적인 후원회를 조직해 정치자금을 공적으로 모금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런 길이 차단돼 편법으로 출판기념회라는 기묘한 이름의 후원회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우리나라 정치가 매우 후진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이를 개선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인구 대비 정당 가입률이 매우 저조하다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정치가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원하는 정치의 방향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에 가입해 열심히 참여하고 응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정치는 일종의 공공재다. 정치가 좋아지면 그로 인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본다. 하지만 정치가 부패하고 타락하면 그 피해도 국민이 받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인재들이 정치 분야에 지속적으로 유입되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중요한 일은 기성 정치인과 정치신인이, 또는 기성 정당과 신생 정당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보장하는 법규를 만드는 일이다. 공정경쟁을 제한하는 현행 정치관계법의 체계를 손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 정치관계 3법을 손보는 것은 결국 국회의 몫이다. 그런데 국회에 입성하자 마자, 기득권층이 되는 국회의원이 자기 손으로 공정한 법을 만들기는 어렵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고양이 집사인 주인의 몫이다. 우리 정치의 진정한 주인인 유권자들의 생각을 반영해 국회의원들에게 공정한 법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압박을 가해야만 한다.

앞으로는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에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이상한 출판기념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진정한 정치적 파티로써의 후원회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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