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피난이었다. 그렇게 떠난 피난 생활은 길 위에서 약 4년. 중국이라는 대륙을 종으로 북상했던 고등어 떠살이 가족이었다. 거리는 바다에 인접한 상하이에서 중국 서쪽 깊은 내륙인 충칭까지 무려 1만2천리.” (본문 ‘유화’ 내용 중)

피탈의 상처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여인들의 웅혼한 여정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성두 작가의 첫 장편소설 ‘산으로 간 고등어’(일곱날의빛刊)가 출간됐다.

소설은 삼대(3代) 여인의 구한말에서 근대까지 약 150년의 이야기다. 구한말 조선과 중국, 근대 한국을 무대로 한다. 조선의 어머니와 딸들, 그녀들의 고단한 인생사는 영화 속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1801년 신유년, 1839년 기해년, 1866년 병인년을 오가며 충청남북도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벌어진 순교의 현장을 생생히 담았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보부상단의 거래를 비롯해 사랑의 약속과 신뢰라는 한 측면을 부단히 다룬다.

소설 속 주된 소재인 ‘고등어’는 1대 주인공 ‘초향’과 봇짐장수의 아들 ‘원이’와의 사랑의 계기가 된다. ‘원이’의 어머니는 고등어를 염장해 파는 간잡이었다. 또 이야기 흐름 내내 주인공들은 고등어를 각별히 자신들의 처지로 빗대고 있다.

얼마 지나 초향은 이곳에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한 새로운 인물 박춘삼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 가슴 아픈 사연이 펼쳐지고, 송이는 두 번째 남자 춘삼과의 결혼으로 외동딸 송이를 낳고 첫 남자 고등어 소년은 가슴에 묻는다.

춘삼이 죽고 초향과 송이 모녀는 서울 경성으로 자리를 옮긴다. 두번째 주인공 송이는 신학문과 외국 문물을 접하며 신여성으로 성장한다. 때는 1910년에서 1920년 일제강점기 시절. 송이는 뛰어난 정구(soft tennis) 실력과 빼어난 미모로 장안의 화형(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으로 주목받는다.

이윽고 구한말 교란의 사회상과 열강들의 침탈사 가운데, 신분질서의 타파 등 개혁과 맞물려 청춘들의 가변적인 사랑과 고난이 이어진다. 특히 정구를 통해 차별에 고민하고 시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2세대 청춘들의 이야기가 뜀박처럼 전개된다.

소설의 무대는 마지막 3대 주인공 유화가 등장하면서 중국시대로 넘어간다. 유화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현장을 겪는 인동초와 같은 여인으로 상징된다. 그녀의 삶과 시절은 내내 전쟁과 피란사다. 그녀의 굵직한 이야기는 1940년대 중국 내전과 태평양 전쟁, 1945년 해방전후의 사회상, 6·25전쟁 부산에서의 피란시절, 1960년 4·19까지.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시대사를 펼쳐보인다.

무엇보다 주인공 여인들의 강한 인상들이 한 몫한다.

딸 송이를 살리기 위해 초향이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조선합병의 주역이었던 하야시 곤스케 앞에서 고등어 회로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나 2대 주인공 송이가 정구를 통해 펼치는 역동적 몸짓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자주적인 캐릭터로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3대 주인공 유화 역시 전생과 피난사를 훑으며 인동초의 여인으로서 아려하면서도 끈질긴 인상을 준다.

작가는 “어머니와 고향을 소재로 잃어버린 우리 정신사의 한편을 찾고 싶었다”며 “아픔이자 탄식 그리고 순명이며 의지를 담은 ‘고등어’를 소재로 박해의 역사를 다뤘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