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스스럼없이 막말을 내뱉고 상대방에게 배려 없이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들은 대화의 맥락과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거나 불쾌한 말을 서슴지 않게 하곤 하는데, 가장 최악인 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어릴 적엔 그런 상황과 마주하면 당황스럽거나 화가 났지만, 요즘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으면….’하고 말이다.

낯선 존재를 수용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서로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말과 글이 있고, 상대의 행동이나 표정을 통해 전달되는 비언어적 요소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단어는 ‘존중’과 ‘배려’다.

살면서 존중과 배려라는 단어는 종종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존중한다’는 의미는 상대의 생각과 느낌, 신념, 권리 등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삶과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배려’는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존중과 배려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배려 없는 존중은 진정한 존중이 될 수 없고 존중 없는 배려는 허울일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이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흔히 말하길 이런 배려와 존중이 없는 이들을 자기밖에 모른다고 표현하지만, 상황이 사회적으로 확대가 되면 ‘독재자’가 돼 허울 좋은 이권 다툼만 일삼는 ‘정치가’ 혹은 생명을 앗아가는 ‘프로 전쟁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쟁과 정론은 있어야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듯 결론은 모두가 공멸하는 것뿐이다.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더라도 필자를 괴롭히는 건 인스타 화면에 가끔씩 스쳐가는 다친 아이들의 모습이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피해를 봐야 하는 이들이 생겨나야 하는 상황은 어딜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실제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케테 콜비츠’가 그린 작품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여인’은 이와 같은 전쟁의 참상과 슬픔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케테 콜비츠 作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위키피디아 검색>

그림 속에는 죽은 아이를 두 손 가득 안은 채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상적인 건 표정 없는 죽은 아이와 이와는 정반대로 고통에 괴로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표현돼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림은 당시 일곱 살이던 콜비츠의 아들 패터와 자신의 모습을 모델로 삼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후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의 비보를 실제로 전해 들어야만 했던 그녀다. 그녀의 삶은 기구하기도 하다. 생의 마감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였고, 그 사이 아들과 손자를 차례로 잃게 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잃은 콜비츠는 전쟁에 반대하는 투사가 됐다. 그리고 사회부정과 비인도적 행위 등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독일의 집단적 슬픔에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오로지 자신만 아는 태도는 주변을 불편하게도 멀게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만든다.

우리가 잘 아는 독재자 혹은 전쟁영웅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나폴레옹을 들 수 있다. 한때 그는 프랑스 제국을 세우고 유럽 전역을 정복하면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특히 프랑스 혁명 후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 영웅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황제가 돼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또한 독재적인 통치방식과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들을 희생시키는데, 이로 인해 그의 행보와 업적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혹자는 그를 역사상 큰 영웅으로 추대하기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폭군으로 기억한다.

독재자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가 그린 ‘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가 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전성기였던 보나파르트 시대 상징이 된 작품으로 나폴레옹 1세가 긴 빨간색 왕복과 왕관을 착용하고 왕좌에 앉아있는 모습이 권위적으로 그려져 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作 ‘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위키피디아 검색>

왕좌에 앉아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대칭이 벗어나지 않게 잘 그려져 있으며 보고 있으면 마치 고대 신화 속 신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독자적인 종교화를 보는 기분이 드는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이 느껴지는 작품 속 나폴레옹의 용맹함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넘쳐나는 세상은 이상 속에서나 바라볼 수밖에 없을 유토피아일까?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문형선 작가의 유토피아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

유토피아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세상, 일명 천국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문형선 작가의 작품 ‘SPACE-UTOPIA(영암)’에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월출산과 더불어 오묘한 형상과 색을 가진 꽃 그리고 화면 중앙에 마치 세계수처럼 우뚝 선 아름드리나무로서 환상적인 이미지가 화폭 속에 펼쳐져 있다.

작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완벽한 이상세계인 유토피아에 대한 모티프와 표현방식은 이 같은 표상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표상도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시대, 문화 속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현남 전남대 강사

그러므로 작가는 그중 하나의 과정이라 볼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을 빌어 그림으로 드러나는 유토피아 공간을 통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현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자본과 권력으로 점철된 현실 공간과 가상현실의 혼돈 속에서 각각의 이상향이 발현되고 실현되기를 꿈꿀 수 있는 공존의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작가의 말과 그림을 빌어 보자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문화 속 우리의 유토피아는 어때 보이나?

세기를 초월하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여러 가지 경제, 사회 문제 속 생의 고통은 깊어져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와 존중의 모습을 먼저 보인다면 우리가 바라 마지않는 유토피아도 언젠가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현남·전남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