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산행) - 설봉 강백년
十里無人響 山空春鳥啼(십리무인향 산공춘조제)
逢僧問前路 僧去路還迷(봉승문전로 승거로환미)
십리를 가고 가도 사람 소리 없는데
산은 스산하며 공활하고 봄새만 우네
스님께 앞길을 묻고 스님 가니 혼미하네.

시상은 갑작스런 상황에서 쏟아진다.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던 시상이 우연한 기회나, 새로운 상황 전개 속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이겠다. 시상에 입맞춤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산행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산 손님들의 의견들이다. 새소리가 천국을 이루더니만, 꽃이 소곤거린다. 자연의 미동은 시상의 원천일 테니. 십리를 걸어가도 사람의 소리는 자취도 없고, 산은 텅 비고 봄새만이 슬피 운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스님이 떠나고 나니 갈 길이 다시 혼미해지기만 하네’(山行)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646년 부교리로 있을 때 ‘강빈옥사’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한 때 삭직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1646년 문과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해 동부승지에 올라 떠오르는 별이란 칭호를 붙이기도 했다.

작가는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십리를 걸어가도 사람의 소리는 자취도 없고 / 산은 텅 비고 봄새만이 슬피 우네 // 스님을 만나서 앞길을 물었더니 가르쳐 준데 / 스님이 떠나고 나니 갈 길은 다시 혼미해지기만 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산길을 걷다’로 번역된다. 동행자가 없이 걷는 산길은 터벅터벅하다. 이런 스산한 길을 걷다가 사람이라도 하나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을 지 상상이 되는 대목이다. 녹음이 짙으면 하늘도 보이지도 않고,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연상하게 된다. 바람이라도 씽하게 불면 낙엽이 날리면서 사나운 짐승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

시인은 이런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음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그 가운데 시상의 주머니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까지도 배어나온다. 십리를 가도 사람의 소리는 하나도 없고, 산은 비고 봄새만 구슬프게 운다고 했다. 임을 찾는 산새의 울음일까. 벗을 불러 모으려는 소리일까? 시상의 그림자는 머뭇거린다.

화자는 이렇게 터벅터벅한 발길이 무겁기만 하더니 반가운 사람 한 분을 만났다. 마침 걷고 있노라니 마침 스님을 만나서 앞길을 물으면서 반가웠는데, 스님이 길을 안내하고 지나가고 나니 길이 다시 혼미해졌다고 했다. 반갑게 맞이할 때 마음과 헤어지고 나서 허전한 마음의 배반적인 시적인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놓치지 않고 얽힌 시가 살아있는 작품이 된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十里: 십리. 십리나 먼 길. 無人響: 사람의 소리가 없다. 인적이 끊기다. 山空: 산이 텅 비다. 春鳥啼:봄새가 울다. 봄의 철새가 울다. // 逢僧: 스님을 만나다. 또는 만나서 길을 묻다. 問: 묻다. 前路: 앞길. 앞으로 갈 길. 僧去: 스님이 가다. 路還迷: 도로가 다시 희미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