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夜會飮(월야회음) - 가주 이상질
叢篁近月自生風 復有荷花小閣東(총황근월자생풍 부유하화소각동)
莫道他鄕愁遠客 主人樽酒不曾空(막도타향수원객 주인준주불증공)
대숲에 가까운 달 저절로 바람 일고
작은 누각 동편에 연꽃까지 피었는데
주인집 술동이에는 술 떨어질 날 없네.

조주삼배(朝酒三盃)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술은 낮술보다는 저녁술이 제격이다. 달빛이 훤하게 비친 야밤에 술독에 빠진 달을 마시는 흥취는 이백의 시선을 생각하게 된다. 흥에 취해 한 곡조 뽑는 가락은 천하의 일품이었을 것이고, 소담이 적시는 가슴은 넉넉했을 것이다. 이것이 밤에 모여 앉아 나누는 대화의 정겨움이다. 대숲에 가까운 달 저절로 바람이 일고, 게다가 작은 누각 동편에는 연꽃까지 피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타향이 먼 나그네 수심케 한다고 말해 보게나’(月夜會飮)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가주(家州) 이상질(李尙質:1597-1635)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1633년 헌납, 성균관직강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북관에 갔다가 돌아와 호당에서 사가독서를 했다. 1634년 원종을 종묘에 추숭하려는 것을 간하다가 종성으로 유배됐고, 이듬해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회양에서 죽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대숲에 가까운 달 저절로 바람이 일고 / 게다가 작은 누각 동편에는 연꽃까지 피었다네 // 타향이 먼 나그네를 수심케 한다고 말해 보게나 / 주인집 술동이에는 술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네’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달밤에 모여 술을 마시며’로 번역된다. 선현들의 시를 읽다보면, 맑은 기운에 쓰는 시상보다는 술을 한 잔 하면서 쓰는 시상이 시의 멋과 맛을 톡 쏘게 한다. 진심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심은 시지를 가득 채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넉넉해 보인다. 그래서 흔히 ‘주색시’(酒色詩)라는 말을 숨김없이 했다. 술 한 잔에 시를 쓰고, 시 곁에는 여인이 곱게 단장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생각은 선경(先景)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음을 알게 한다. 대숲에 가까운 달 저절로 바람 일고 게다가 작은 누각 동편에 연꽃까지 곱게 피었다는 시상 주머니다. 달이 비치니 바람이 절로 일고, 연꽃까지 피어서 절경을 이뤘음으로 곱게 보이는 그림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화자는 자연의 섭리를 한 아름 부여안고, 타향의 수심에 스스로 달래는 방법을 찾아냈음을 알게 된다. 타향이기에 먼 나그네 수심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게나, 그렇게 되면 주인집 술동이에 결코 술이 떨어진 날이 없을 것이라 했다. 고향 생각이 날수록 술로 시름을 달래면서 시상의 얼개를 충만할 수밖에 없었음을 비친다.<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叢篁: 대숲. 近月: 달이 가깝다. 自生風: 저절로 바람이 일다. 復: 다시. 게다가. 有荷花: 연꽃이 있다. 小閣東: 누각 동쪽. // 莫道: 말하지 말라, ‘道’는 말하다. 他鄕: 다른 고향. 愁遠客: 먼 나그네의 수심. 主人: 주인. 樽酒: 술동이. 不曾空: (술이) 떨어질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