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3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우리는 5·18 행사주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번 5월 행사 주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깊다. 5월 행사를 이끌어야 할 5·18 공법단체와 5·18 행사위원회가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5월 광주가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쟁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광주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과 의혹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요구될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다. 또한 미술사적으로도 ‘민중미술’이라는 독특한 미술양식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부터 1990년 중반까지 나타난 민중미술은 사회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의 삶과 행동을 주제로 하는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광주지역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체험한 많은 화가들이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광자협)’, ‘시각매체연구소(시매연)’,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광미공)’ 등의 미술 단체를 조직하여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특히 ‘5월 광주 화가’로 잘 알려진 홍성담은 ‘오월 연작’ 목판화 작품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오월 목판화 작품은 ‘횃불행진’, ‘암매장’, ‘투사회보’, ‘가자, 도청으로’, ‘헌혈 구호’, ‘대동세상’, ‘도청 궐기대회’, ‘효천 전투’ 등으로 작가는 10일간의 항쟁을 50점의 판화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1979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를 조직했던 홍성담은 1980년 5월에는 문화선전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오월의 진실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1984년에 그는 그 생생했던 기억들을 칼끝으로 담아냈다.

50점의 판화 연작 중 ‘대동세상Ⅰ’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나는 항쟁 10일 동안 가장 완벽한 세상을 봤다. 우리는 항쟁 10일간의 기억만으로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평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고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그는 ‘대동세상Ⅰ’에 가장 인상 깊었던 광주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어지럽혀진 도로를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두 손에 쥔 사람,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내보이는 트럭을 운전하는 시민군, 총을 들어 밝게 웃는 트럭 위의 시민군들, 이들을 위해 김밥을 만들어 전해주는 아주머니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과 극한의 두려움에 치 떨고 있는 광주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서로를 위해주며 밝게 웃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말 그대로 모두 하나가 되는 ‘대동세상’을 엿볼 수 있다.

피 흘려 쓰러진 이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시민군들을 위해 주먹밥을 건네주고,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도로를 청소하고, 나보다는 남의 안부를 먼저 걱정해 주었던 43년 전 광주와 광주시민들은 모두가 하나였다. 그리고 대동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자주 이야기했던 진정한 ‘광주정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은 오늘, 홍성담의 오월 판화 ‘대동세상Ⅰ’은 우리가 아닌 나만 존재하는 듯한 현대사회에서 진정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를 깊게 성찰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