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지리산 화엄사 암자순례길
자연을 닮아가는 길, 부처에게로 가는 길
2022. 11. 15(화) 19:25 가+가-

화엄사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단풍나무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있다. 마치 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수많은 사찰을 품고 있다. 큰 절만 손꼽아 봐도 화엄사를 비롯하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대원사, 실상사, 벽송사 등이 쉽게 떠오른다. 산내 암자까지 헤아려보면 그 숫자 가늠이 안 된다. 오늘은 천년고찰 화엄사와 산내 아홉 암자를 순례하려고 한다.
화엄사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단풍나무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있다. 일주문을 거쳐 금강문, 천왕문을 통과하면서 점점 부처의 세계로 스며들어간다.

보제루 옆을 돌아서니 큰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대웅전과 각황전 등 화엄사의 중심전각이 위엄을 드러낸다. 화엄사의 대표적인 전각인 대웅전(보물 제299호)과 각황전(국보 제67호)은 건물 규모도 장대하지만 높은 석축위에 있어 마당에서 올려다보니 더욱 웅장해 보인다.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 제336호)에 절을 올리며 탐·진·치 삼독을 벗어나지 못한 나를 참회한다.

화엄사에서 중심이 되는 법당은 대웅전이지만 각황전이 더 크고 당당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과 직각을 이룬 위치에 있는 각황전은 건물 자체도 웅장하지만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각황전 앞에는 높이 6.4m에 이르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큰 석등(국보 제12호)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엄사에서 중심이 되는 법당은 대웅전이지만 각황전이 더 크고 당당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과 직각을 이룬 위치에 있는 각황전은 건물 자체도 웅장하지만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화엄사에 올 때마다 각황전 뒤쪽 높은 곳에 있는 4사자삼층석탑에 오르는 일을 빼놓지 않는다. 7년여 보수공사를 끝내고 작년에 일반인에게 개방됐으니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108계단을 오른다. 4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있는 곳은 효대라 불리는데, 화엄사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화엄사 전각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색으로 물든 산속의 화엄사가 화엄세상처럼 펼쳐진다. 4사자석탑이라는 이름은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모습에서 유래했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님의 위엄과 지혜를 상징한다.

화엄사 4사자석탑. 4사자석탑이라는 이름은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모습에서 유래했다.


대웅전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구층암으로 향한다. 시누대 푸른 잎 위에서 붉게 물든 단풍이 더욱 화사한 색상을 드러낸다. 단풍나무들 사이로 스님들의 참선공간인 선등선원이 바라보인다. 우아한 색상의 단풍이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는 선승의 법열(法悅)처럼 느껴진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묵언하며 10분쯤 걸었을까? 삼층석탑과 함께 구층암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구층암에서는 1천 불상을 모신 천불보전 앞 요사채를 받치고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뒤틀리고 굽어있는 모과나무 기둥은 늙은 고승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 같다. 천불보전 앞에는 살아있는 모과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죽은 모과나무 기둥과 살아있는 모과나무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불생불멸의 이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구층암에서는 1천 불상을 모신 천불보전 앞 요사채를 받치고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사진 上) 각황전 앞에는 높이 6.4m에 이르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큰 석등(국보 제12호)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의상암을 거쳐 화엄사계곡을 건너 연기암 가는 길을 만난다. 그윽한 숲길이 인도하는 대로 발길을 옮긴다. 고요한 숲길을 걷고 있으니 새소리, 물소리가 목탁소리처럼 들려온다. 부처에게로 가는 길은 자연을 닮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집착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나무와 물은 이미 해탈한 부처에 다름 아니다.

연기암에 도착하자 화려한 단풍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연기암은 화엄사의 원찰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백제 성왕 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화엄법문을 설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돼 4백 여년 동안 폐허상태로 있다가 1989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연기암에 들어서니 거대한 문수보살입상이 중생을 맞이한다. 높이 13m에 달하는 연기암 문수보살상은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을 바라보며 화엄법문을 설하고 있다. 암자 앞마당에는 거대한 마니차가 서 있다. ‘옴마니반메움’을 주문하면서 마니차를 세 바퀴 돌렸다.

높이 13m에 달하는 연기암 문수보살상은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을 바라보며 화엄법문을 설하고 있다.


문수전에서 100m 쯤 떨어진 관음전 가는 길에는 잘 물든 단풍이 화사하게 빛난다. 천수천안을 가진 관음보살이 자애로운 손길을 내미는 것 같다.

연기암을 출발해 임도를 따라 걷는다. 호젓한 임도가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둘이 도란도란 애기하며 걷기에도 좋지만 혼자서 조용히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청계암 입구에 도착했다. 청계암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낙엽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때 아름답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다. 암자 옆으로 실개천 수준의 계곡물이 흘러간다. 청계암(聽溪庵)이라는 이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생의 작은 목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경지를 가지라는 뜻일까?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혼자 걷고 있으니 나무들이 말을 걸어온다.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 너머의 대화일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언어란 바로 말없는 말이고, 말의 세계를 훨씬 뛰어넘는 무위의 언어다.

임도에서 벗어나 보적암으로 가는 굽어진 길을 걷는다. 보적암은 대웅보전과 몇 채의 당우들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커다란 돌배나무 한 그루가 석탑을 대신하고 있다. 암자는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일 것이다.

화사하게 빛나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미타암 표지석이 길안내를 해준다. 임도에서 200m 쯤 들어가자 석조불상 세 기가 맞이한다. 불상 옆 조그마한 연못에는 수련 잎이 떠 있다.

미타암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미타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임도변에 내원암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 석불좌상이 앉아있는 내원암은 다른 암자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다.

천년고찰 금정암으로 들어선다. 금정암은 화엄사를 대표하는 산내 암자다. 금정암은 천년고찰이라 하지만 1991년 화재로 소실 된 후 1993년과 1998년 두 차례 중건했다. 금정암에서는 나무 사이로 화엄사 당우들이 바라보인다. 금정암은 당우들이 화려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3층 목탑형식을 띤 극락보전이다. 대웅전격인 반야보전의 화려한 단청과 아름다운 문살 등도 눈길을 끈다.

금정암은 화엄사를 대표하는 산내 암자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3층 목탑형식을 띤 극락보전이다.


화엄사주차장으로 내려선다. 화엄사계곡에서는 정제된 계곡물이 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계곡 바위에는 낙엽들이 사뿐히 앉아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낙엽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름다운 삶이 곧 아름다운 내려놓음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지리산 화엄사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화엄사는 수많은 산내 암자를 갖고 있는데, 화엄사에서 시작해 아홉 암자를 순례할 수 있는 암자순례길이 있다.
▶코스 : 화엄사주차장→화엄사→구층암→의상암→연기암→청계암→보적암→미타암→내원암→금정암→지장암→화엄사주차장
▶거리, 소요시간 : 7㎞, 3시간30분 소요(관람시간 포함)
※출발지 내비게이션주소 : 화엄사주차장(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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