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7)이학영
“부당한 정부 아래 정의로운 사람되자” 일념
전남대 문리대 학생회장…유치장서 이강 접선 후 본격 활동
‘민중의 소리’ 배포 등 반유신투쟁…“봉심정, 자유·혁명 장소”
2022. 09. 27(화) 20:29 가+가-

전남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 출신인 이학영(70)씨는 한국민주투쟁위원회에 가입해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민중의 소리’를 배포하는 등 끊임없이 반유신투쟁을 전개했다./오복 기자

“부당한 정부하에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다. 감옥이야 말로 이 시대에 가장 용기있고 정의로운 사람이 있는 곳이다.”

전남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으로 1974년 학생 시위 혐의로 감금된 이학영(70)씨는 유치장에서 만난 이강의 말에 매료돼 이후 남민전 사건까지 길고 험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순창농고를 졸업 후 전남대 문리대 71학번으로 입학했다.

당시 전남대학교는 교련반대 시위로 시끄러웠고 휴교령이 내리기를 수 없이 반복하던 때다.

그가 운동권의 의견을 수렴해 학생회장이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씨가 전남대에 입학 하던 해, 위수령이 발동되면서 대학 내에 군대가 진입했고 대학원 건물 2층 도서관의 무고한 학생들을 붙잡은 사건이 계기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공부만 하는 학생들을 잡아가겠느냐’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도서관은 포위됐고 선무방송이 흘러나왔다.

“나오면 용서, 나오지 않으면 진압” 이라는 말과 함께 도서관 내부로 최루탄이 던져졌고, 학생들의 몸에는 최루탄 가스와 분말이 뒤덮였다.

그때 한 여학생이 책상 위로 올라서서 “여러분 지금 우리 여학생들이 나가면 여기 있는 남학생은 다 죽습니다. 함께 남아 버팁시다”고 말했고 그의 용감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씨는 군인들에게 끌려 나왔을 때 ‘지식인은 총칼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구나’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동안 몰랐던 처참한 세상’을 겪고 불의한 일을 되풀이되게 하지 말자는 의지로 학생 시위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73년 운동권 윤강옥의 권유로 문리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데모와 시위, 정학 등이 반복되면서 성적이 좋지 않아 출마 가능한 사람이 없었던 때 광주 운동권 인사들은 자신을 주목, 내정한 것으로 추측했다.

이듬해 4월9일 전대 앞 시위를 계획했던 전날 오전 0시를 기점으로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됐고, 그날 밤 9시까지 자수를 하면 봐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씨는 상황실에 가서 자수를 고민하던 때 전남대 대책본부에 끌려갔다.

모진 고문에도 이씨는 오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오전 8시까지는 버텨줘야 데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탓.

이후 유치장에서 만난 이강을 통해 이씨는 광주권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더 깊이 진입했고, 봉심정을 드나들면서 김남주 등과 접촉한다.

유치장에 있던 60일 동안 그는 이강을 통해 쿠바 이야기, 베트남 이야기 등을 접하고 민주화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낀다.

당시 들은 말 중에 뇌리에 박혔던 것은 “부당한 정부하에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다. 감옥이야 말로 이시대에 가장 용기있고 정의로운 사람이 있는 곳이다”라는 이강의 말이었다.

서울구치소로 이동한 후 감옥 안의 세상은 별세계였다.

문리대를 다니면서 언어학만 공부했던 그에게 처음으로 사회과학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노동, 은행,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면서 그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혔다.

이씨는 “데모만 하는 것이 학생운동은 아니구나”라고 깨닫고 석방 후 학생운동의 맥을 잇고자 중앙도서관 잔디와 봉심정을 드나들면서 이강, 김남주, 박형선, 최철, 윤한봉 등과 반유신·민주화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운동권 내 역할 분담을 하던 때 이씨는 윤강옥과 서울에서 돈을 벌어서 운동자금을 대는 분야를 맡아 상경, 서울 종로구에서 소매업을 시작했지만 윤강옥의 선배가 돈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6개월만에 종지부를 찍고 광주로 내려와야 했다.

이후 공사판을 전전, 평화시장에서 재단 일을 배웠지만 경찰이 쫓아와 그마저도 지속할 수 없었다.

노동운동마저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김남주와 이강에 의해 접한 한국민주투쟁위원회에 77년 가입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로 그는 교양 강좌를 받으면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및 기관지인 ‘민중의 소리’를 8차례 걸쳐 배포하는 등 반유신투쟁을 전개했다.

보급투쟁 차원에서 땅벌작전으로 79년 4월 최원석(재벌)의 집을 털다 미수에 그치고 감옥에 갔을 때 다시 모진 고문속에서도 동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이씨는 “봉심정은 자유와 혁명의 꿈을 꾸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면서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감시를 피해 일도 할 수 없어 방황했고 이곳에서 토론하고 활동 방향을 계획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군사독재정권의 폭정하에 세상을 바꾸는 일을 모색했던 장소로 봉심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민주화의 꿈을 꾸던 청년들이 꾸준히 결속돼 80년 이후로도 민주화 운동 세대와 세대를 이어질 수 있게 한 역사적 장소”라고 강조했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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