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할 때,
애써 멈춰야 할 때
너를 놓아주었다면
지금쯤
나는 네 곁에 있으려나
산을 등에 지고
구비구비 흘러온 세월
물여울 되었느니
별빛 홀로 유랑하듯, 또
광야의 밤 지새야 하나
두가 세월교에 앉아
세월에 묻힌 사랑 하나
지울 수 없어서
분꽃 눈물에 목매느니.

<이선근 약력>
▲‘문학춘추’ 시 등단
▲문학춘추작가회 이사, 서은문병란문학연구소 사무국장 역임
▲광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꽃이 되려는 조건’ 외 5권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박덕은 문학평론가>
이선근 님의 시 ‘두가 세월교에서’에서의 시적 화자는 두가 세월교에 앉아 지난날의 사랑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있다. 시적 화자는 과거의 어떤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했던 자신의 결정을 아쉬워하고 있다. 무엇을 멈추지 못해서 끝내 사랑하는 연인을 붙들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연인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애증을 멈추지 못했던 것일까. 하여튼 시적 화자는 연인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게 이별의 원인이 되어 끝내 헤어졌다. 이 시는 무엇을 멈추지 못했는지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 상상의 폭이 넓어진다. 더더구나 제목도 ‘세월교’다. 전남 곡성에 있는 다리라고 하지만 추상적인 의미의 세월교로도 충분히 상징성이 있다. 우리는 세월이라는 다리를 건너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뜨겁거나 차가운 만남을 세월이라는 몸에 흔적으로 남긴다. 어쩌면 세월은 몸을 통해 수많은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기억이 깃든 세월교를 우리는 지금도 건너고 있다. 이 시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세월교에서 사랑과 이별 그리고 만남에 대한 사색들을 하게 한다. 이런 시가 있어 행복하고 동시에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