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동 옛집 정원을 보니
내 열여섯 때쯤 모친이 여민 꽃밭
아직도 피지 못한 꿈들이 있었다
깔깔거리는 내 소리도 있었다
삶의 자갈길 슬쩍 감추며 돌아서서 보니
채송화는 이슬을 이고
과꽃은 투덜거리며 허리 꺾어 배웅을 한다
주인 잃은 허허한 집 조용히 울음 운다
우리는 함께할 수 없구나
내 기억 속 정경 그때 그 집이 그립다
옛집은 말이 없으시다

<공난숙 약력>
▲‘시인정신’ 수상, ‘소년문학’ 동시 당선(2008)
▲문학춘추 이사, 광주문인협회 회원
▲문학연대 상임이사
▲저서 : ‘내가 보듬은 발자국이 가장 슬프네’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론-박덕은 문학평론가>

공난숙 님의 시 ‘지산동 그 집’에서의 시적 화자는 지산동 옛집을 돌아보고 있다. 옛집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은 그리웠던 그 시절에 가 있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지만 그 시절을 푸르게 노래했던 이름들은 여전히 반짝인다.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수다들이 깔깔거리고 친구의 웃음소리가 환하다. 옛집은 누구에게나 향수를 안겨 준다. 만삭의 달이 몸을 푸는 동화 같은 밤하늘, 함부로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던 별빛의 반짝거림이 있었기에 옛집은 그 존재만으로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시적 화자는 그와 같은 그리움을 ‘아직도 피지 못한 꿈들이 있었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아직도 피지 못한 꿈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첫사랑일까, 아니면 서녘을 이고 달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일까. 영글지 못한 그 꿈이 옛집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키고 있어 애잔하게 다가온다. 옛집 거기엔 어머니가 가꾸었던 꽃밭과 아직도 피지 못한 꿈, 깔깔거리는 소리, 이슬 인 채송화, 투덜거리다 허리 꺾어 배웅하는 과꽃 등이 있었다. 시적 화자는 그들과 함께할 수 없지만, 추억 속 그때 그 집 그 정경이 그립기만 하다. 말이 없는 옛집에서 할 말이 많아진 시적 화자, 그 눈시울이 촉촉하다. 옛집의 꽃밭에 서서 이미지의 구현을 발판으로 시적 형상화를 빚어내고 있다. 옛집을 추억하는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에서 어머니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또, 이미지의 입체적 구성도 독자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