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만난 사람
어제 본 듯 아까 본 듯
격의 없이 편안하다

몇 년 만에 만난 사람
내일 볼 듯 모레 볼 듯
헤어짐도 편안할까

안녕하며 흔드는 손
핑그르르 붉어지는 눈시울

열 걸음에 스무 걸음에
돌아보니 그 자리
쉰 걸음 백 걸음에 다시,
돌아보니 희미한 그 자리

석양빛 산그늘에
배롱꽃처럼 흔들리고 있다

<최인순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이사, 광주시인협회 회원
▲계간동산문학주간, 용아기념사업회이사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최인순 님의 시 ‘가슴에 붉게 피어’에서의 시적 화자는 몇 년 만에 만난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인연은 겨울처럼 냉혹한 아픔을 낳기도 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또 어떤 인연은 가슴에 붉게 피어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가슴에 붉게 핀 그 인연을 시적 화자는 만난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부럽다. 봄이 씨앗과 인연을 맺고 꽃이 나비와 인연을 맺듯 서로의 삶을 뜨겁게 해주는 그런 인연을 만난 것이다. 우리는 가슴에 핀 그 인연의 힘으로 버거운 하루를 살아내고 절망을 이겨내며 내일을 노래한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어제 본 듯 아까 본 듯 격의 없이 편안한 사람을 몇 년 만에 만난다. 그런데 그 사람과의 헤어짐이 아쉽다. 첫 만남에서 인연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나고 그 사람의 진가를 안 후에야 인연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인연은 씨줄과 날줄의 인연처럼 아름답다. 안녕하며 헤어질 땐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 걷다가 자꾸 아쉬워 뒤돌아보게 하는 사람, 헤어지는 뒷모습이 석양빛 산그늘에 배롱꽃처럼 흔들리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이 시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감성의 섬세한 결이 느껴진다. 저절로 가슴에서 붉게 피어나는 감성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시의 특질 속에 담겨져 있는 이 아름다운 감성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