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4)박용수
‘5·18에 빚진자’로 진실규명·명예회복 헌신
전남대 ‘독서잔디’ 창립…유신 체제 타파·민주화 앞장
언론인으로 5·18 진실보도…“역사 흐름에 존재 영광”
2022. 08. 21(일) 20:24 가+가-

박용수(65)씨는 유신체제 타파와 민주화를 위해 독서잔디를 결성했고, 언론인으로서 5·18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힘썼다.

“고독한 군중 속에 너와 나는 사생아들… 어둠이 내리면 불빛 사이로 떠나야 하는 우리는 사생아.”

이는 숨 막히는 유신체제 아래 한 줄기 빛을 갈구했던 학생들의 의지를 담은 전남대학교 독서잔디 서클에서 단가처럼 불렀던 노래 가사의 일부다.

박용수(65)씨는 진도 출생으로 전남대 사범대 화학교육과를 입학해 같은과 친구였던 광주일고 출신 강성일과 유신체제 타파와 민주화를 위해 독서잔디를 결성했다.

이 모임에는 지병문(독서잔디 고문)과 이항규, 류우연 등 광주일고 피닉스 출신과 구병옥, 조현종 등 6명이 함께 했으며, 기존 ‘일몰회(태양은 진다)’로 작명했던 모임은 학생처의 거부로 독서클럽명인 ‘독서잔디’로 변경됐다.

독서잔디는 동아리 등록 때마다 지도교수 선임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중요한 시국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들이 투옥·체포되는 등 탄압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70년대 이후 전남대 학생운동의 한 축으로 신영일, 전용호, 문석환, 이수영, 한경, 김승남, 최향동 등 많은 학생운동 지도자를 배출했다.

박씨는 교사였던 아버지를 본받고자 자연스럽게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사회과학 성향 서적을 읽으며 의식을 깨우치고 시대상황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독서잔디 회원들과 매일 모여 토론을 이어갔다.

보다 의미있는 토론과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그는 1978년 처음 봉심정을 방문했다.

당시 봉심정은 운동권에서 민청학련 세대와의 연결점이자 학생운동, 시국 논의를 위한 아지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산, 들, 논, 밭뿐인 허허벌판을 올라가야 했지만 학생들은 그곳을 찾아 밤새워 토론을 이어갔고 단체생활을 하며 민주 의식을 성숙시켰다.

박씨는 봉심정이 당시 민주인사들의 주요활동이 이뤄진 구심점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전남대학교 학생운동의 큰 물줄기였던 루사와 독서잔디 학생들이 모두 봉심정을 찾아 반유신과 민주화를 목표로 시국토론을 진행했고, 이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구심체 기능을 했다는 것.

두 서클은 이후 탈춤반·들불야학 등으로 계속해서 분화해 나갔고, 5·18민주화 운동에서 응집된 결정체로 활약했다.

1979년 여천 화양중학교로 발령받은 박씨는 뜻을 이루지 못한 민주화 운동이 못내 마음에 걸렸고, 1980년 5월18일 졸업 후 운동권 모임 결성을 위해 계림성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날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 사전구금 등 민주화 통제가 심해졌고, 박씨는 지병주와 시내 현장으로 이동해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에 합류했다.

최루탄이 계속 터져 숨도 쉬기 버거웠지만, 그는 시위대와 함께 민주화를 외치면서 계엄령에 맞섰다.

오후께 소총을 메고 한 손엔 곤봉을 든 착검상태의 계엄군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혼비백산했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됐다.

새벽 두암동 자택에 겨우 도착해 다음 날 학교 출근을 위해 시내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 박씨는 수 없는 검문을 거쳐 겨우 여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잠 못 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집단적 강경 진압이라는 국가폭력을 눈앞에서 마주했던 그는 시민과 동료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고 무력감에 독주로 잠들어야만 했다.

박씨는 당시를 ‘의협심이 끓어올라 가슴이 불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를 담아 21일 학교에서 잉크로 빼곡히 쓴 성명서를 작성해 광주로 향했다.

하지만 시외버스 등 모든 이동 경로는 이미 막혀 있어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마침내 도착한 27일 그는 5·18의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의 소식을 들었고 동지와 선·후배, 시민들에게 빚졌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 군 제대 후 곧바로 언론인의 길로 들어섰다.

박씨는 1985년 CBS공채로 입사해 5·18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강경한 언론탄압 상황에도 그는 5·18기념예배 성명발표 행사, 5·18민중항쟁 5주기 등 시민사회 재야단체 행사를 크게 취재·보도했다.

실제 6월항쟁 시위현장에서는 언론탄압을 이겨내는 진실 보도로 시민들에게 환호와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9년 5·18 희생자의 유골 발견에 대한 단독보도를 하는 등 현장 취재기자로서 최선을 다해 ‘빚진 자’의 몫을 이어갔다.

그는 또한 5·18 당사자의 직접증언을 담은 영상기록 필요성을 느끼고 1996-1999년 증언기록사업에 함께했다.

조아라, 홍남순, 송기숙, 외신기자 등 300여명의 영상증언을 기록으로 남겼고 이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5·18민주화운동이 등재될 때 함께 등록됐다.

이후 박씨는 광주CBS 본부장, CBS 상무, 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광주시청 민주인권평화국 국장을 역임하면서 ‘빚진 자로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평생을 쏟아부었다.

그는 “광주를 이끈 민주 선배들의 맥을 이어 다시 이어가는 학생운동의 큰 흐름에 연결고리로 존재했다는 것은 영광”이라면서 “봉심정은 작은 공간이지만 70년대부터 수많은 조국 민주화를 위해 힘쓴 민주열사들이 시국 정당을 논의하고 민주화를 도모하던 공간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계승·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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