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8)정용화
광주권 노동·학생·문화운동 결속…사회활동 기획
민청학련·전남대교육지표사건 등 민주화 점조직 활동
현대문화연구소 통한 뒷바라지…‘넘어넘어’ 수집 총괄
2022. 07. 10(일) 20:21 가+가-
“점조직 활동이 활발했지. 잡히면 안 되잖아…근데 누군가는 각 부문의 정보를 모으고 전달해 이어가야 한단 말이지.”

정용화(69)씨는 현대문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군부 독재 시절 각 부문으로 흩어졌던 농민, 노동, 학생, 청년, 문화 사회운동권을 결속시켰고 구속자협의회 재야인사들과의 활동 방향을 기획·제시했다.

정씨가 사회운동에 뛰어든 건 고등학생 재학 시절 독서토론 동아리인 ‘광랑’ 활동을 하면서다.

책은 사회 전반에 눈을 뜨이게 했고 그는 학생회 총무를 맡으며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학생과장이 가해 학생 학부형과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중징계해야 할 처벌을 근신처리로 대신한 일에 대해 학생회 13명이 모여 일주일 동안 시위를 벌였고, 교장·학생과장 등을 사퇴시킨 교육운동은 그를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 73학번으로 입학한 정씨는 고교 학생회 시절 교육운동 전력으로 일찌감치 김정길, 이강, 김상윤, 윤강옥, 윤한봉 등 전남대 운동권 선배들과 접촉하면서 당시 시국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봉심정에 드나들며 운동권 사람들의 모임을 비밀스럽게 이어갔다.

봉심정에서는 시국 토론과 더불어 후배양성, 토론회 등이 이어졌고, 풍물패 같은 문화운동도 활발했다. 또한 개별적으로 찾는 사람들과 체계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학습을 위해 방문하는 지도 동아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당시 사회운동의 감시가 삼엄했기 때문에 정씨는 2명의 점조직으로 활동했다. 그에게 사회운동 지침을 전달했던 선배는 윤한봉이었다.

이듬해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해 김정길, 이강, 윤한봉 등이 모두 구속됐지만, 점조직 활동으로 보호받았던 그는 겨우 체포를 피할 수 있었고 이후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정씨는 전남대 교육지표사건에 참여했다. 당시 11인의 교수진을 필두로 국민교육헌장을 바로잡고자 했던 그들은 학생운동 진영과 접촉해 후속활동을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1978년 6월27일 우리들의 교육지표 발표 이후 29일 곧바로 작전대로 시위에 들어갔다. 민청학련 이후 근 4년 만에 최대규모 시위대가 시내까지 진출해 학생운동을 펼쳐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전남대, 조선대생 20여명은 감옥에 끌려갔으며, 무기정학만 해도 40-50여명에 달했다.

그는 “이후 사회활동은 1970년대 중후반에 재야운동세력을 결집시키고, 일각에선 도시게릴라전을 벌이는 등 해방운동의 형태로 변화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투옥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증오심’이라면서 “모두가 그랬겠지만 우리는 모두 증오심을 가라앉혀야 그곳에서 학업과 공부에 전념하고 나와서 다시 사회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78년 석방된 정씨는 윤한봉의 부름으로 장동 로터리 청산학원 빌딩 2층에 현대문화연구소를 만들고 1980년 5월17일까지 전국적인 재야의 정보 교류와 기회 방향을 잡는 일을 도맡았다.

연구소는 1970년대 후반 정보의 집합소로 농민·노동·학생·청년·문화운동 등 각 부문으로 나뉜 사회운동을 한데 모아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예비검속이 시작되자 정씨와 윤한봉은 나주와 서울, 강진 등으로 피신했다.

이후 5·18 배후조종세력으로 윤한봉은 전국 수배됐고 정씨는 피신 도중 시위를 참여했단 이유로 전남도경찰국 형사들에게 붙잡혀 6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1년 형만 받고 나올 수 있었지만 고된 옥살이는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이후 그는 시위운동 외 5·18 당시 사료 수집과 후학양성으로 활동 분야를 넓혔다.

5·18민주화운동 때 사용된 어깨띠, 리본, 대검 등 모든 물품을 하나하나 수집하기 시작했고 ‘넘어넘어’ 초판 총괄기획을 맡았다.

1981년도 6월 인쇄물을 뿌리는 운동팀들이 체포됐고, 그는 다시 1년 6개월동안 도망자 신세가 됐다.

인쇄물 작성 이외 형사들이 그를 수배한 이유는 5·18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윤한봉의 미국 이민을 도왔기 때문이다.

수배를 당하면서 장기간 도피생활을 했던 정씨는 1982년 12월17일 치안본부에 자진출두했다. 광주에서 재야 인사가 보낸 사건의 마무리를 맡기는 서신을 전달받은 터였다.

그가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간 날은 김대중이 무기징역을 받고 미국으로 신병치료차 출국하는 날이었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 등이 연결돼 청와대 입장에서도 사건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인지 치안본부는 윤한봉의 밀항을 도운 정씨 등 30여명을 모두 훈방 조치했고 그는 5·18 인쇄물 배포·작성 혐의만 적용받고 광주지검으로 이송됐다.

그 후로도 정씨의 재야활동은 이어졌고 현재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고문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정씨는 “70년대는 독서나 토론을 통해 시국을 진단하고 사회운동에 들어서는 많은 학생이 있었다”면서 “봉심정은 그 당시 운동권 선·후배들이 모여 누구든지 시국을 논하고 공부하며 후배를 양성하던 곳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와 계승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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