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요즘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 중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아마 ‘상식’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행동하는)양심’과도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식’(常識)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보통의 지식’을 의미한다. 언뜻 듣기에는 알아먹기 쉽게 들리기도 하지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결코 쉽지 않은 말임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상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반적’이라던지 혹은 ‘보통’이라는 말조차도 어찌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의 의미에 맞게 사회생활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모두가 이렇게 상식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절대 전쟁과 같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때론 상식보다는 ‘비(非)상식’이 더 유용할 때가 많고 살아가기에 편한 길인 듯 보일 때가 많다.

적어도 필자가 경험했던 서른 이후의 세상은 상식에 맞게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맞는 것을 아니라고 우기는 것’ 그 경험이 가장 컸다. 자신들의 시각으로 보고, 재단하고 판단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기득권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상식 따윈 안중에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편승해 자기 생각은 없이 오로지 기득권에 맞춰 마치 모래성처럼 흩어지고 또 모이고, 한낱 바람 한 번에 모두 사라질 뿐인 것에 목을 매며 행동하는 모습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른 길이 있다면 또 올바른 길이 있듯 매번 그른 길 만을 추구할 수는 없고, 그 길만이 흥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사이클을 돌 때마다 상생을 거듭해온 자유와 민주주의처럼 그 길을 따라 늘 함께 해왔던 희망의 빛은 앞으로도 밝게 비출 것임을 확언한다.

정의와 정도(正道)를 의미하는 신화 속 인물로는 그리스 여신 디케(정의)가 있다.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올림포스 신 중 하나인 그녀는 에우노미아(질서), 에이레네(평화)와 함께 계절의 여신 호라이(Horae)로 불리기도 한다.

에드워드 존 포인터 作, ‘호라 여신들’(Horae Serenae) <위키피디아 검색>

계절이 규칙적으로 돌아가도록 통제하는 호라이는 시간의 여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꽃과 식물의 생장 같은 자연에 대한 통제와 인간사회의 질서를 도맡아 관장하기도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 作, ‘비너스 탄생’ 부분도 <위키피디아 검색>

이들이 명화 속에 등장할 때는 에드워드 존 포인터의 ‘호라 여신들’처럼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는 여신의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 탄생’에서 보듯 미의 여신 비너스의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각각 표현이 되어지고는 한다.

먼저 호라 여신들 여럿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에드워드 포인터의 작품에서는 르네상스 시기 이전, 중세 혹은 초기르네상스 시기로 회귀를 외쳤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의 영향을 받은 면모가 드러난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 이후 상업의 발전 등으로 타락에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이전 ‘신앙심 두텁고 순수하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을 반영한 듯 자유스럽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뛰놀고 있는 여신들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돼 있다.

한편, 초기르네상스 화가였던 보티첼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호라의 모습은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안가에 다다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몸을 감쌀 의상을 손에 들고서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천과 입은 옷에서도 살필 수 있는 화려하게 수 놓여진 봄꽃과 허리띠 대신 분홍색 장미를 엮어 허리 위쪽으로 올려맨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가 부활과 재생을 상징하는 봄의 호라이 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호라이는 여러 역할로서 그림 속에 등장하곤 한다. 주목을 받는 신이 아닌지라 어떤 때는 호라이가 몇 명인지 그리고 이름과 역할 또한 제각각일 경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적힌, 질서, 정의, 평화 세 여신이 가장 신뢰를 받는 캐릭터라고 보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처럼 하늘의 문을 지키거나 혹은 아프로디테의 시중을 드는 계절의 여신으로서가 아닌 호라이 중 한 명인 ‘정의의 여신’으로서 ‘디케’(Dike)를 살펴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디케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며 저스티스(justise)의 어원이 되기도 하는 유스티티아(justitia, 별 처녀)와도 동일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는 인간 세상에서 함께 살았으나 철의 시대로 접어들며 서로를 헤치며 타락을 일삼고, 전쟁을 일으켜대는 인간들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 버렸고 그 뒤로 별자리가 됐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유스티티아, Hans Gieng 作, 스위스 베른의 정의의 분수 <위키피디아 검색>

자신은 처녀자리로 그리고 한 손에 선과 악을 가리키던 저울은 천칭자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머니 법의 신 테미스의 속성을 타고 태어난 탓에 손에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든 그녀의 이미지는 어머니 테미스와 겹칠 경우가 많다.

또한 신통기에서 묘사된 그녀의 모습은 ‘안개로 몸을 감춘 채 이 세상 곳곳을 암행하며 인간의 부당한 판결과 수치스러운 행동을 감시하는 제우스의 파수꾼’으로 나타나 있다.

인류가 타락할 때도 신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지상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정의를 호소했다고 한다.

이런 디케 여신을 기리기 위해 전 세계의 법원 앞에는 어김없이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대체적으로 천칭과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지만 그 시대별 모습은 제각각이다. 초기 손에 들고 있던 풍성함을 나타내던 과실이 가득 담긴 원뿔 통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칼이 차지했을 뿐 아니라, 눈을 가리는 가리개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무궁화를 화환으로 얹고 법전을 옆에 둔 채 앉은 자세의 여신상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눈가리개는 물론 칼도 없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작가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상징에만 근간해 전통이네 아니네라는 비판에만 바쁠 뿐이다.

물론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좋지만, 외형을 가다듬고 상징성을 더 드러낸다고 과연 정의감이 더 투철해지는 것일까?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스위스 베른에 있는 석상을 살펴보면 잿밥보다는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543년 세워진 이 석상은 여타의 석상과는 조금 다르다. 다름 아닌 여신의 발밑에 세속권력을 나타내는 군주와 교권을 의미하는 교황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테러로 파괴되어 1986년 다시 재건되긴 했지만 첨부된 초기 드로잉에서도 살필 수 있듯 의도했던 정신은 흐려지지 않고 있음이다.

“어떤 권력이건 그보다 위에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정의’(행동하는 양심)이다.”

또한 ‘흐르는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점이다. 그러므로 항상 눈을 밝혀 올바른 길을 찾아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디케가 계절의 여신이기도 한 것처럼, 계절은 반드시 ‘새 희망’과 다시 함께 찾아와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