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미니멀리즘적 나눔 정신을… / 이성대
2021. 12. 30(목) 19:54 가+가-

이성대 시사평론가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에서 등장한 예술운동의 한 흐름이다. 1960-1970년대 초반 미국의 시각 예술과 함께 강력하게 전개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예술운동은 추상적 표현주의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해석되고 있다. 장식과 군더더기를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하나의 미술사조로 출발한 미니멀리즘은 곧 디자인, 건축,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

예술분야에서 미니멀리즘이 등장하고 유행하게 된 것은 예술운동 자체의 논리에 근거하는 것일 테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변화도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전후의 폐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재개된 대량 생산-소비 체제는 단기간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이 풍요로움 속에서 역설적으로 대중들은 삶의 방향을 잃은 듯하다. 간결하면서도 본질에 충실한 삶에 대한 욕구와 갈증이 커졌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197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은 곧 예술영역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 “많을수록 좋다(more is better)”는 자본주의적 대량 생산-소비 체제에 맞서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니멀리즘은 삶의 최소주의 원칙이라고 할 만하다. 삶의 필요를 넘어선 대량생산과 과잉소비의 흐름은 현대인을 잉여 상품의 바다에서 표류하게 만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온갖 제품들은 일시적인 관심과 필요에 부응하는 것들이었지만 신상품과 새로운 기호에 밀려 불필요하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이 되고 말았다. 잉여와 군더더기를 버리고 삶의 본질에 충실할 것을 주창하는 미니멀리즘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배경이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본질에 충실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가이드 라인이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낯익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물의 본말과 경중의 구분을 중시하고 그 중심을 잡고자 집요하게 노력했던 성리학의 주장과 겹친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미적 취향에서 비취색으로 영롱한 고려청자의 화려한 이미지는 단순함과 절제의 미덕을 강조한 조선백자의 순백색의 아름다움으로 대치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에 이르는 온갖 격식과 잡다한 학설, 화려한 수사를 일거에 박살내 버리는 선불교의 기개는 지극히 단순한 직관의 힘으로 돈오의 경지에 이를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미니멀리즘의 역사적 흐름에는 일본 선불교의 자취도 묻어있다고도 하니 미니멀리즘에서 느끼는 낯익음은 엉뚱한 것이 아니다.

현대의 생활인들이 미니멀리즘에 끌리는 것은 고도성장과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현기증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풍요로움의 한 가운데서 느끼는 고독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은 단순함과 절제 속에 감춰진 사물의 본질적 아름다움에 탐닉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풍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그 반대쪽에 서 있는 빈곤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미니멀리즘 운동이 연대와 나눔의 정신에 근거해야 함을 말해 준다. 연대와 나눔이 없는 미니멀리즘은 가진 자의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것이다.

특히 전후의 폐허와 가난 속에서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와 성취를 이뤄낸 우리에게 미니멀리즘은 이율배반적인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과 가난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기성세대일수록 미니멀리스트적 삶의 자세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미니멀리스트적 삶의 원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내가 가진 잉여의 제품들을 거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간결한 삶의 자세를 실천하고 지향하며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의 정신이 가치있다는 생각이 조용히 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바이러스 앞에 부자와 빈자의 구별이 없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해법은 인류 공동의 협력일 수밖에 없다. 이제 곧 2022년 새해가 된다. 새해에는 미니멀리스트적 연대와 나눔의 정신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종식을 이끌어내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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