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반디가 사는 동네 / 수필 - 조화련
2021. 07. 05(월) 19:23 가+가-
현대는 불빛이 지배하는 시대. 휘황한 네온사인이 눈을 마비시키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차단해버린다. 이 불야성의 시대에 짙은 어둠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있으니 다름 아닌 반딧불이이다. 반디는 밝을수록 힘을 잃고 어두울수록 힘을 내어 ‘발광’한다. 빛을 내는 것 자체가 짝짓기를 위한 구애 활동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불빛은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치명적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 각종 휘황한 불빛들로 반디는 갈수록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이 시기에 그나마 생태계가 맥을 이어 보존된 곳이 있다. 광주 남구의 끝자락, 광주와 화순 경계인 행암동이다.

어느 날 늦은 밤 시내에서 집으로 오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을 때다.

“광주대 근처 행암동이에요”

“그 동네는 광주 시내에서 유일하게 개똥벌레가 사는 곳이라고 소문난 동네 아닙니까?”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흡사 내 자식 칭찬하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으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귀갓길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무등산 줄기를 타고 흐르는 내를 끼고 산책로가 길게 나 있는 이곳. 하루해가 지고 사위가 어둑해지면 인공구조물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풀벌레들의 청아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숲을 흔든다.

검정 비단에 푸른 정화(精火)를 수놓은 듯 반딧불이의 군무가 펼쳐지고 야행성 피조물들의 구애 활동의 서막이 올려지면 산책로에는 밤무대 열성 팬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아련히 추억을 떠올리며 바라보는 중장년 부부, 팔짱을 낀 다정한 연인들. 반디를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린이들까지 나와 “와아~ 와아~ 반디불이다!” 하고 두 손 벌려 팔짝팔짝 뛴다.

운동 중 산책로 갓길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아저씨 한 분. 그의 시선 끝자락을 따라가니 별빛보다 더 선명한 초록불 하나 풀섶에 옴팍 들앉아 휘황한 빛을 내고 있다.

“반딧불이입니다. 요건 암놈인데 암컷은 날개가 없어 날지를 못해요. 이렇게 숲속에서 빛을 내며 수컷을 유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공중을 나는 저 녀석들은 수컷인데 걔들도 짝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내 마음의 요정 반디 얘기에 구미가 당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가가 바짝 경청한다.

“반딧불이는 ‘애 반디’와 ‘늦 반디’가 있는데 지금 나온 얘들은 늦 반디이고 애 반디는 5, 6월에 나옵니다.”

내가 미처 묻지도 않은 반디 이야기를 일사천리로 술술 꺼내는 걸 보니 그분의 생물학적 상식이 전문가 수준이거나 아니면 반디 사랑이 유별난 분이란 걸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낱 미물인 곤충을 이처럼 관심을 갖고 대한다는 것도 흡사 환경지킴이 동지를 만난 듯 반갑고 뿌듯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그 아저씨는 공중에서 숫 반디가 잘 보고 내려앉도록 발광체를 가리는 풀잎을 헤쳐주고 있었다. 그러고서도 자릴 뜨지 못하고 연신 허공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이고 있다. 그분은 짝짓기할 신랑 반디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놀라워라!’ 반디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살뜰하던지 흡사 자식을 향한 부모 모습 아닌가. 감동과 함께 나는 농 섞인 한마디를 꺼냈다.

“아저씨, 우리가 자릴 비워줘야 신랑 반디가 내려와 신방을 차릴 거 같아요……? 후후∽∽”.

“아, 그럴까요?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겠네요. 하∽ 하∽ 하∽”

호탕한 웃음을 허공에 날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이 흡사 오랜 친구 같은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발광 생물들이 빛을 내는 데는 먹이 유혹·적의 방어·사랑의 신호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 반디의 경우는 오로지 사랑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반디는 오직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주의 아닌가.

이들은 가끔 약속된 장소에서 집단 미팅도 하는데 미팅에 참여한 암수가 거의 동시에 일정한 주기로 빛을 낸다. 구애의 빛을 먼저 내는 쪽이 의외로 수컷 아닌 암컷이란다. 수놈은 상대에게 끌려가고 암놈이 수놈보다 덩치가 더 크고 구애할 권리도 우선이라고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반딧불이는 사람과 달리 불을 밝힌 채 꿈같은 초야를 치르는 일이다. 환상의 춤사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반디 요정. 그러나 짝짓기 그 시간만큼은 종족 번식에 대한 사명감을 띠고 당당하고 용감한 요부가 되는가 보다.

딱정벌레목 반디불이과 곤충으로 청정습지에서만 서식하는 반딧불이. 환경의 대명사인 반디를 매개 삼아 나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준 산책로의 ‘반디 사랑’ 아저씨처럼 우리 모두가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연을 아끼고 보살피는 진정한 자연인이 된다면 언젠가는 수많은 반디가 밤하늘 별빛처럼 유영하는 여름밤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숲속 아방궁(?)의 칠보단장 신부 반디, 부디 백마 탄 왕자님 만나 알콩달콩 행복한 사랑 나누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조화련 약력>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서커피 문학상
▲동쪽나라아동 문학상
▲새벗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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