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14)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내는데
2021. 06. 01(화) 19:43 가+가-
夜臥誦詩有感(야와송시유감)[1] / 읍취헌 박은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니
마구간에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우는데
밤 깊어 초승달 뜨고 찬 솔에 소리 나네.
枕上得詩吟不輟 嬴驂伏櫪更長鳴
침상득시음불철 영참복력갱장명
夜深纖月初生影 山靜寒松自作聲
야심섬월초생영 산정한송자작성

시상은 사물을 보면서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만히 누워 있다가 불현듯 시심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시심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서 시지(詩紙)를 채워 가는 시적인 맛은 또한 별미였다. 우리 선현들이 대체적으로 일으키는 시심의 한 덩이들이다. 이따금 서사적인 내용이 주종을 이루지만 서정성이 많았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자니, 마구간에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울기만 한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내는데(夜臥誦詩有感1)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읍취헌(邑翠軒) 박은(朴誾:1479-1504)으로 학자다. 1946년(연산군 2) 사가독서자 선발에 뽑혔다. 학문이 넉넉하고 문예를 성취했으나 마음속에 만족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 동래로 유배됐다가 의금부에 투옥돼 사형을 당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자니 / 마구간에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울기만 하는구나 // 밤이 깊어 가는 이 달은 초승달이려니 /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릴 내는데]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밤중에 누워 시를 읊다 느낌이 있어1]로 번역된다. 인적이 끊긴 고요한 밤이 되면서 더없이 적적하다. 늦은 밤이라 대화도 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호롱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적막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밤 어찌 시적인 소화가 없었으리.

시인은 베개를 베고 얼른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시심을 억제하지 못했겠다. 베개를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고 있자니, 마구간에 깡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울기만 한다고 했다. 말까지도 시인의 깊은 심정을 알고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화자는 초승달임을 직감하면서 말 이외의 또 다른 자연이 소리 내고 있음을 떠올린다. 밤이 깊어 가는 달이 초승이려니, 고요한 산 찬 소나무가 절로 소릴 낸다고 했다. 산이며 소나무도 함께 화가 같은 심정이었음을 토로한다. 이어지는 후구에서는 [늙은 종이 재를 털어 등불은 환해지고 아내는 술을 퍼와 권하는 도다 // 얼큰해져 이불 덮고 다시 높이 누웠으니 / 가슴속 불평이 있었던가 깨닫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자와 어구
枕上: 침상. 得詩: 시를 짓다. 시상이 떠오르다. 吟: 읊다. 不輟: 그치지 않다. 嬴驂: 마구간. 伏櫪: 구유에 엎드려. 更長鳴: 길게 소리 내어 울다. // 夜深: 밤이 깊다. 纖月: 가는 달. 初生影: 초승달의 그림자. 山靜: 산이 고요하다. 寒松: 찬 소나무. 自作聲: 스스로 소리를 짓다. 저절로 소리를 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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