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이다. 정서적으로도 말랑말랑함이 느껴진다. 때문일까. 요즘 책읽기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 전, 전남도립도서관의 부름으로 ‘2021 올해의 책’ 도서 선정 작업을 도와준 일이 있다. 한 달여 제한된 시간 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도서들을 읽고 단 한 권의 책을 골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주최 측에서 나름의 잣대를 갖고 거르긴 했다지만, 심의 대상에 오른 책들은 적잖은 분량이어서 일단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삶의 결이 다르고 독서의 취향도 다를진대, 몇몇이 모여 불특정 다수에게 책 한 권을 골라준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골라주는 사람이나 읽는 이 모두 좋은 책을 만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미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강조되어 온 진리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몇 세기의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선 백 번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여행할 때 책을 가져가고, 우리 조상들도 아회(雅會)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우아한 모임’이란 뜻으로, 마음과 뜻이 맞는 선비들이 어울려 함께 시도 짓고 읽으며 소통하고 교감하는 모임을 말한다. 풍경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인가.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 여행은 술과 돼지 삼겹살을 가져가는 게 필수가 되었다. 너무도 천하고 가벼워진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물론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조지 오웰에게 들어보자. 그는 책 읽기를 순전히 이기심에서 찾았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독서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이기심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은 책을 읽었다는 심리뿐만 아니라, 고전이나 베스트 셀러 등의 특정 분야의 책만을 고집해서, 혹은 집중적으로 읽으려는 심리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통찰력을 습득하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또 조지 오웰은 미학적 열정에서 두 번째 이유를 찾았다. 미학적 열정이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이라고 볼 때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흥미와 즐거움, 페이소스와 카타르시스 등은 여기에 포함되리라. 따라서 그의 말을 종합하면 책을 읽는 이유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좀 더 독서에 대한 의미를 확장해보자. 행복을 깨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비판의식이다.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은 비판적으로 말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한다. 비판적인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을 리 없다. 자기도 모르게 생긴 비판의 독(毒) 때문에 그렇다.

심리학자들은 하나같이 천성적으로 비판적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삶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치일 때 사람은 누구나 비판적으로 돌변한다고 한다. 비판적이 되었다는 것은 마음에 독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마음속에 독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마음의 독을 해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점점 희열이 차오르면서 감사와 칭찬과 긍정적인 사람으로 인격이 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의 독이 독서를 통해 녹아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요즘, 가는 곳마다 꽃 대궐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을 순 없지만, 그 마음으로 꽃그늘에서 책장을 넘기자. 가벼운 책이면 어떠하랴. 책 읽기도 하나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기회는 많다. 자투리 시간만 잘 활용해 책을 읽어도 문화인 말을 들을 수 있다. 책 읽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던가. 이 봄날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