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툇마루에 앉아>는 햇살이 눈 부신 초여름 오후를 참 편안한 풍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항용 생각한 고향이란 툇마루에 걸터앉아 밥상도 받고 찾아온 손님과 얘기 나누던 바로 그곳이다. 눈앞에는 어머님이 가꾼 꽃밭에서 여러 색깔의 접시꽃이 꽃등처럼 만발해 자별한 맛을 더한다. 그런데 그처럼 꽃밭을 가꾸시던 어머님은 지금은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못내 허전한 마음이 된다. 이제 어머니 부재의 공간에는 어머니가 닦으시던 그 반질한 툇마루를 만지며 노모의 체취와 대화하는 화자도 하염없는 세월은 지나고 있으리라.

▲시 <김>은 짧은 형식이지만 여러 이야기가 읽히는 작품이다. “식탁에 올라온 김 한 접시”엔 바다가 품고 있는 ‘해초 향’을 몽땅 짊어지고 밥상까지 도착하느라 온몸에는 ‘검푸른 색’ 멍이 들고 ‘종잇장처럼 야위었’음에 상상 중에 뭉게구름 같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뜨거워도 김이 나지 않는다 해 ‘김’이라고도 하고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김씨’여서 그리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김을 구우면서 해초 향이 진동했다는 시인의 긴 터널 같은 안채에는 또 다른 어떤 얘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시 <교감>에서 시보다는 수필작가로 친숙한 오덕렬 시인을 읽는다. 오 시인이 노래한 ‘교감’은 궁금한 마음을 열치며 한눈에 든 광경이 ‘길 잃은 새끼 노루’와 ‘석상’과의 대비적 전개를 통해 한쪽은 말간 청포도 알이고 다른 쪽은 탁주 같은 탁한 눈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폐가 사립짝에서 눈이 마주친 두 대상은 함께 놀라면서 방향 잃은 노루가 되고 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급 지경에서 ‘할 바를 잃었다’는 의미이며 방향을 잃고 도망간 새끼노루나 그 앞에서 석상이 된 시인이 ‘파르티잔’이 돼 튀는 도망자의 모습을 읽게 한다.

▲수필 <예술가들의 혜안>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풍암동의 어느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작품이다. 김형미 수필가는 많은 수필을 집필하고 시집도 상재해 운문과 산문을 넘나드는 문필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인정받는 분야는 花예술인 꽃꽂이 분야다. 이미 독일에서 본격 공부를 했고 지금도 쟁쟁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한 사람들이 외계인들을 연상시키지만 영화감독, 사진작가, 화가, 성악가, 플루트 전공자, 피아니스트에다 화예술의 김형미 시인까지 천일야화처럼 돌아가면서 전공 분야에서 겪은 저마다의 체험담을 나눈 자리는 흔한 자리가 아니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