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지역
사람들
오피니언
TV
기획
인터뷰
스타브랜드
창조클럽
문학마당
역경강좌
장갑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20) 박경훈
‘4·3’의 칼로 새긴 역사의 광기

2021. 02.23. 18:57:08

박경훈은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부친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사업에 실패 후 빚쟁이들의 극심한 독촉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어머님의 헌신은 4남매를 부끄럽지 않도록 성장시켰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그림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장남으로 의무감이 작동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그림을 참지 못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치도록 그려야 행복했다. 결국, 모친과 누님의 격려로 미술대학을 진학하면서 ‘화가는 배고프고 고달픈 삶을 감수’ 한다는 충고를 삼켜야 했다.
그는 대학 시절, 제주는 오랜 역사 속에 민초의 수탈과 착취로 수많은 봉기와 한은 돌담에 쌓여 분노의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음을 깨우쳤다. 4·3은 그에게는 커다란 업보로 대물림된 시대정신과 역사적 정당성을 일깨웠으며, 이러한 아픔으로 민중미술을 선택하고 일으켜 세웠다. 오랫동안 금기시돼 입에 담지 못했던 4·3을 주제로 제주는 물론 전국 작품전시 순회와 시각매체를 통한 교육을 반복했다. 그는 제도권 영향에 머물렀던 문예활동 확장과 함께 진보적 미술그룹 창립을 연이어 주도했고 이러한 연장선에서 ‘4·3, 50주년기념행사’와 ‘4·3 특별법공포(2000)’의 성과를 일궈내는데 일조를 한다. 한때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수사당국의 감시와 작품압수도 감수해야 했다.


-‘4·3’, ‘5.18’의 만남, 현실참여 문예운동-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많은 독서를 한다. 이렇게 풍부한 독서량은 훗날 문예활동에 세계관과 문학적 상상력을 확장시켜 가는데 소중한 자산이 되며,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제주의 민중미술운동을 주도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그는 대학 1년(1981년) 겨울, 소설책 ‘순이 삼촌’(현기영)을 통해 ‘4·3’과 첫 대면을 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제주4·3 진상규명’의 노력은 ‘보도연맹 학살’과 함께 오랫동안 금기가 됐으나, ‘4·19’의 희망은 ‘5·16’으로 입막음 됐고, ‘광주5·18’로 이어진 군부독재는 빨갱이 이념으로 제주는 ‘연좌제’로 관리됐다. 오랜 기간 감춰지고 금기시돼 간헐적 귓속말로 들어야 했던 ‘4·3’을 소설책 ‘순이 삼촌’을 통해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후 ‘4·3’의 역사적 깨달음은 시대를 향한 불꽃이 돼 정의감을 불태우고, 그의 칼끝은 민초의 함성이 돼 역사를 각인한다.
‘대동’ 수채 1800㎝×240㎝ (1984)

고교시절(1980) ‘광주 5·18’은 방송에서 전해주는 왜곡된 정보로 스쳐 지나간다. ‘북한군에 의한 일부 광주시민은 폭도가 되었구나!’라는 생각만을 했다. 대학진학 후 주변 지인들로부터 ‘광주5·18’에 대한 구전과 영상자료를 접하면서 군인에 의해 수많은 광주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시대만 다를 뿐 ‘제주4·3’이나 ‘광주5·18’이나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었다.

그해(1980)말, 소설가 ‘황석영’은 ‘장길산’ 집필을 위해 1년간 제주에 체류하는데, 이 시기 제주의 청년예술가는 그와 교류하면서 광주의 진실과 민족민중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첫 지역진보예술 문화패 ‘수눌음’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 통해 문학인과 연극인들이 진보적 연극-마당극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그룹에 선배들과 함께 그도 동참한다. 이때는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도 없었던 시기이다. 그는 미술을 무기로 옥죄는 시대의 당당함으로 역사적 책무감으로 무장돼가고 있었다.

대학졸업(1985)과 동시에 그는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동인미술관, 제주)을 야심차게 개최한다. 이 전시를 통해 거칠고 강한 작품경향을 드러내면서 정당하지 못한 현실에 맞서 예술을 무기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제주에서는 과거에 보지 못했던 형상성이 강한 작품을 경험하고 의아스러웠을 것이다. 이 전시에 ‘광주’ 연작을 출품했다. 작품 ‘광주2’(1985)는 수채화 작품으로 굵고 거친 붓질, 신문을 콜라주 기법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소총을 매고 있는 시민군은 단순한 이미지의 형상이지만 많은 함축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태극기 암시와 광주시민의 정당성과 억울함을 외치는 신문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었다. 이는 단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광주2’ 종이 위에 수채 120㎝×90㎝ (1985)

그는 진보적 젊은 미술인과 함께 ‘그림패 바람코지’를 결성(1988)한다. 창립전으로 첫 민중 판화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국내 민중미술 판화양식이 80년대 진보미술 진영에서 유행됐던 것은 다량의 복제를 통해 민중의 교육적 효과의 양식적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목판화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의 디지털 양식에 대한 실험으로 작품도 동시에 진행하게 됐다. 그의 작품은 당시 제주의 문화예술계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게 뜨거웠던 80년대를 뒤로하고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제주4·3’은 제주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부당한 정권에 의해 자행된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희생된 제주민초의 혼을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그에게 누구의 강요나 권유도 없었다. 오롯이 그는 스스로 한라의 용암이 되고자 했으며, 돌담에 맺힌 붉은 민초의 함성이 돼 새벽 바다 검푸르게 피어오른 혼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들불이 된 판화, 민중의 바다로-
90년대에 들어선 그는 어느 때보다 활발한 제주 민중미술운동의 선두에서 헌신한다. 특히 타 지역(광주, 서울 등) 진보미술단체와 교류와 함께 작품 활동을 통해 4·3민중항쟁 목판화 연작발표에 적극적이었다. 이즈음 서울에서 진보미술인 선배인 ‘강요배’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1994).

강요배는 그와 진보문화예술진영에 천군만마의 힘이 돼 ‘탐라미술인협회’를 창립한다. 이즈음 제주는 각종 개발투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진보적인 제주 예술가들은 이들과의 연대로 송악산군사기지, 골프장건설, 탑동매립지, 화순항해군기지 등을 반대투쟁 한다.

그는 ‘바람코지’(1988), 제주 민미협 ‘탐라미술인협회’ (1994), 전국미술인연합(1994), 제주민예총(1994) 등을 창립하고 활동을 주도하면서 회장, 사무국장, 정책실장의 요직을 겸직한다. 그리고 틈틈이 작품제작과 함께 단체 활동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수면시간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고 다시 쪼개어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도 기념비적인 대형벽화(제주시청사 벽화, 1997)작품과 개인전시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제주 4·3을 주제한 그룹 ‘그림패 바람코지’의 <4월 미술제>(1989. 4)는 수사기관의 감시 속에 진행됐다. 이 전시가 최초의 ‘4·3미술전’이다.

이 전시 후 ‘그림패 바람코지’는 그림마당 민(서울)에서 순회전을 개최하는데, 서울에 ‘4·3’을 알리는 첫 제주작가 단체전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이듬해 ‘그림마당 민’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개인전 출품작 ‘한라산’(1988)은 80-90년대 거친 판화가 진보미술계에 유행되고 있던 시점에 제작됐다.

‘한라산’은 제주 앞바다에서 민초가 한라를 강건하게 감싸고 있는 작품이다.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제주민초는 폭력과 수탈에 짓밟히고 뜯기고 갈기갈기 찢기어 갈 때마다 항거로 바람에 날리는 혼 불이 될 지언정 잡초처럼 질기게 삶의 터전과 자존을 지켜왔다. 이러한 제주민초의 강인함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 ‘한라산’은 바닷 속에 몸을 버티고 양팔 뒤로 한라를 감싸고 있는 거인민초는 제주를 지킨다. 양팔의 근육과 손의 강인함, 얼굴에서 읽히는 순박함, 옷깃과 작품 하단의 바다는 전통적 문양의 거센 파도가 돋보이며, 인물과 한라 등 형상미는 굵고 힘 있는 칼 맛과 투박한 한국전통 미를 극대화 시켜주고 있어 보인다. 이 작품은 그가 26세 때 제작했다.

90년대 중·후반에는 바쁘게 활동한다. 당시는 몸을 두 개로 쪼개어 헌신했던 시기이다. 1998년 ‘제주4·3 50주년기념 행사’와 개인전 ‘바람길 넋살림 칼’은 ‘4·3’연작의 거친 판화전이었다. 이 시기는 도민사회에도 ‘4·3’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진보예술가에게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것에서 격려와 관심으로 바뀌고 확장돼갔다.

개인전 출품작 ‘3대’는 목판화이다. 어느 제주여인이 남편과 손자가 40년을 간격으로 여전히 총과 화염병으로 시대에 맞서야 하는 어쩌면 한반도의 이념적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그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비통할까? 그의 아들과 손자는 ‘연좌제’에 묶여 어떠한 일을 했을까? 그 여인에게 비통함은 한으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인은 혼이 빠져나가 눈동자가 없다. 이는 그 여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현대사에 민중의 이름으로 새겨진 아픔일 것이다.
‘삼대(三代)’ 목판화 152㎝×69㎝ (1988)


-화가로 문화정치가로 마주한 ‘4·3’ 혼불-
2000년에 들어서야 ‘4·3특별법 공포’와 함께 ‘4·3평화공원’ 조성이 시작됐다. 그는 평화공원 기본구상부터 참여해 설계공모에 정체성 논란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전시팀장을 맡는 등 기념관 조성에 깊이 관여했다. 2008년에서야 개관시킬 수 있었다.

제주는 변변치 않은 출판사가 없어 전시도록이나 출판물을 제작할 때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는 주변 선·후배의 책 편집과 디자인을 도와주다가 출판사를 차리라는 권유에 1999년에 ‘도서출판 각’을 등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22년째 운영하고 있다. 팔리지도 않은 향토문화(무속신화), ‘4·3’ 관련서적 등 지역문화 서적들을 출판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지역 출판계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제주민예총이사장을 거쳐 2016년엔 주변의 요청으로 ‘제주문화재단’ 이사장(2016-2018)을 맡아 임기를 마쳤다. 그의 재직기간 ‘제주문화예술재단’은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기관의 보수성에서 벗어나 진보적 경영이 돋보였다.

박경훈은 다시 30여 년 만에 다시 칼을 잡고 목판을 새기고 있다. ‘4·3’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가히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대형 판화작품 ‘정명-두무인명상도’(正名-頭無人冥想圖, 2018)다.
‘정명-두무인명상도’ 목판화 100㎝×186㎝ (2018)

긴 나무판을 세로로 연결시켜 제작됐다. 머리가 없는 ‘4·3’전사는 죽창과 총을 들고 있고 가운데는 꽃을 든 여인이 있다. 뒤 방사탑에 까마귀는 전사를 위로하고 전투에 나서기 직전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다. 상단에 해와 달을이그려진 ‘4·3’ ‘일월오봉도’는 전사의 고귀성과 검은 배경은 죽음으로 민족과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결연한 각오와 숭고성을 상징하는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군이 출정하기 전 기념사진 같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의 머리가 없는 것은 ‘4·3’이 역사적 해결의 장도에 올랐지만, 정작 ‘4·3항쟁’ 지도부는 희생자와 함께 위령제단에 위패로도 오르지 못했다. 이들은 여전히 빨갱이의 이념 논란에 가둬져 구천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온전히 복권되지 않는 한 ‘4·3’의 해결은 없다는 작가의 항소문이다.

박경훈,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작업실에서 작품제작에 전념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시대는 건강성을 지닌 문화 정치가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에 그렇다. 그가 ‘4·3전사’로 헌신이 있기에 74년 전의 혼령은 그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찌할 수 없이 ‘4·3 화가’이자 문화정치의 전사가 돼 광기가 발산하는 제주 밤바다의 수많은 혼 불과 거센 바람을 마주하면서 자기주술의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박경훈(1962, 제주생)
▶제주대학 미술과 졸업/ 동 대학원(사학과) 수료
▶개인전(제주, 서울, 일본,오키나와 등 10회)
▶단체·초대전
▷2020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로터스 갤러리, 광주) ▷2018 2018, 오키나와 마부니프로젝트(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일본) ▷4·3 70주년 기념 특별전 ‘제주4·3 이젠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05 한일, 일한 5세대 간의 대화,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치야미시; 마루끼 미술관, 일본 ▷2004 평화선언 세계 100인 미술가(국립현대미술관)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그 밖의 어떤 것들(상무대영창, 광주) 외 국내·외 다수
▶주요활동
- 현)도서출판 각 이사
- 현)EAPAP(동아시아평화미술제) 조직위원장
- 제주문화재단 이사장 역임
- 제주민예총 이사장 역임 등 다수

광주매일 TV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