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지역
사람들
오피니언
TV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6)담양 뚝방마을
천년 역사 간직…담양천·관방제림 품 안에
우시장·정미소·대장간 등 생활문화 중심지 역할
마을공동체 옛 명성·문화적 자긍심 되찾기 최선

2020. 11.26. 19:30:48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에 위치한 뚝방마을은 천년 역사의 담양읍 중심부를 관통하는 영산강 상류 담양천을 따라 식재된 관방제림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대나무 숲이 가득한 담양군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된 메타세쿼이아 길과 관방제림 등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도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에 위치한 뚝방마을은 천년 역사의 담양읍 중심부를 관통하는 영산강 상류 담양천을 따라 식재된 관방제림의 아름다운 풍광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담양 경제·문화 중심지로서 명성

천변리 뚝방마을은 옛 죽물시장 가는 길과 우시장이 자리하던 곳으로 담양읍의 상권과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유명세를 떨쳤다. 농삿일은 모두 손으로 하던 시절에 담양군에서 하나뿐이었던 정미소가 자리잡은 민생경제 요충지였다. 마을 중앙의 정미소를 중심으로 공장, 대장간, 상여집 등 온갖 상권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천변리는 당초의 누문리 일부와 간리 일부를 합해 천변리에 편입했다. 강변에 마을이 위치해 있다 보니 마을 앞에 있는 논들에 비가 오면 소똥과 개똥이 흘러가면서 기름진 땅이 저절로 조성돼 모두 부자 논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담양은 지세가 배 형국이면서도 황포 돛배라 돈을 많이 벌면 뒤집어져버려 3대까지 가기 힘들었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경주 최부자는 300년이 가도 유지되지만, 담양부자는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속설이다. 그래서 담양부자는 고향을 떠나야 잘된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했다.

◇자생적 마을공동체 살리기
뚝방길 마실사업으로 변모하는 골목길.

농업시대를 지나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치면서 점차 마을 사람들이 떠나면서 뚝방마을은 노후된 상가와 열악한 주택환경으로 마을이 침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옛 명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되살리기 위해 2020년 ‘뚝방길 마실사업’으로 지역 정체성 회복에 나섰다.

근대생활문화를 재해석하고, 주민들의 전통생활문화에 기반을 둔 인문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주민단합을 도모, 주민간담회를 통해 의견 수렴 및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 주민자치시대 정체성 강화와 자생적 문화공동체 확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을 스토리 발굴사업으로 수집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근대기의 명성을 기억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현재의 5일 장터 및 국수거리 원도심 구간사업과 연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 및 관광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지역특화거리 조성 추진을 준비 중이다.

산업화로 인해 결국 문을 닫게 된 정미소는 정미다방으로 변모해 문화복합공간이 됐다. 공연, 문화프로그램, 독서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내부에는 도정에 필요한 장비들이 그대로 인테리어 소품으로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살펴보는 소소한 볼거리로 공간을 재탄생시켜 주목받고 있다.

뚝방마을의 대표 로컬 맛집 뚝방국수에서 간단하게 국수 한 그릇 하고 정미다방에 들러 차 한 잔과 함께 정미소의 옛 정취를 느껴볼만 하다.

◇마을 입구 수호신 역할 석인상
마을 입구 수호신 역할하는 석인상.

뚝방마을이 위치한 천변리는 1300년 말께 담양인 국무(鞠珷)가 고려의 멸망으로 개성에서 피란 차 이곳에 들어와 지금의 23번지 부근에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국무는 고려조 호부상서 국유의 큰아들이었다. 국유는 이씨 조선에 불복해 두문동에 들어가 이태조의 회유에도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순절한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으로 충절신으로 알려졌다.

뚝방마을의 입구에는 조선 헌종4년(1838)당시 담양 부사 홍기섭이 세웠다는 석인상이 터전을 잡고 있다. 일명 천변리석인상(川邊里石人像)으로 불리는데, 이 석인상은 담양의 지세가 배 모양이어서 이 배를 움직이는 뱃사공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예로부터 마을 입구에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장승을 세워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했는데 천변리석인상이 그 역할을 맡아왔다.

이 석인상은 마을의 양기수씨 집안이 선대에서부터 모셔 온 것으로 조상처럼 생각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양씨가 이사가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제사를 부탁하자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위친계에서 새마을운동 때까지는 추석과 정월보름에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왔고 한다.

신기하게도 천변리석인상은 몸의 절반가량이 얼굴을 차지하고 긴 관에 얼굴이 짧고 코와 입 등이 지극히 희화적인 부분을 담아내 정겨움을 준다.

두 석인상은 약 70m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서있다. 이를 남녀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머리에 탕건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었다.

왼쪽은 키가 조금 큰 할아버지 비석으로 높이 110㎝, 너비 40㎝, 두께 36㎝, 둘레 125㎝, 얼굴은 65㎝로 높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턱 밑에 수염이 역삼각형으로 길게 내려와 남성상임을 암시해주고 머리에는 원유관(遠遺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자세는 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두꺼운 입술과 코가 두드러진다. 눈은 움푹 패여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키가 조금 작은 할머니 비석은 높이 96㎝, 두께 26㎝, 너비 50㎝, 둘레 140㎝, 얼굴 50㎝다. 머리에는 탕건을 쓰고 턱 밑에는 수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성상임을 알 수 있으며 할아버지 상에 비교해 눈과 코, 입 등 얼굴 형태는 더욱 마모돼 있는 상태다.

지난 1984년 2월29일 전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됐다. 마을사람들은 이 일대를 비석거리라고 부르고, 석인상은 뱃사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5일장터, 국수거리 연계 활성화 기대

뚝방마을은 이러한 마을스토리 발굴사업으로 수집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경제 활성화 및 관광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담양읍 천변리에서 태어나 담양미술협회를 이끌고 있는 한삼채 회장은 “문헌에도 찾아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에 상여집, 대장간, 선술집, 우시장 등이 즐비해 있었다”며 “마을사람들은 뚝방국수 인근에 우시장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기에 소전머리라는 지명을 아직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회장은 “소전머리를 기억하기 위해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뚝방마을공동체로 마을 가꾸기를 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자발적으로 마을사람들이 자치시대에 맞게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고 내세웠다.

마을 주민들이 꾸린 천변리 마을 문화행사는 천년 역사의 담양읍 중심부를 관통하는 담양천과 관방제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우시장과 대나무시장이 자리하던 천변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의 마을 공동체 활성화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김다이 기자
/담양=정승균 기자

광주매일 TV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