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영어로 셀프’라는 말을 농담으로 들으면서도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물 정도야 운동 삼아 내가 가져다 마시고, 부족한 반찬 있으면 내 입맛에 맞게 필요한 만큼 덜어 먹는 것이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먹을 수 있고 남겨서 버리지도 않으니 장점도 많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별다른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몸을 움직여서 해결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일들이 생겨났다.

첫 번째는 멋있고 분위기 좋은 대형 커피점에서 겪는 일이다. 세련된 잿빛 근무복에 말쑥한 청년들이 기다리는 주문대로 가서 내가 원하는 음료를 말하고 먼저 결제를 한 뒤 호출 수신기를 받아드는 것.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 까지, 그러니까 수신기에 불이 켜지거나 진동이 있을 때까지, 이야기는 하는 둥 마는 둥 신경을 쓰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일어나 음료를 가지러 가는 것. 나올 때 쓰레기를 분류해 버리고 빈 컵들은 반납 테이블 위에 얌전하게 놓아두는 것이 그런 일들이다.

두 번째는 말로 주문하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 최근에는 모니터를 사용해서 주문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홀로 선 모니터를 앞에 두고 주문을 하는데 더듬거리기도 하고 화면 구석구석까지 살펴가면서 한참씩 걸리다보니 뒤에 서있는 사람들도 신경이 쓰였다. 그냥 편의점으로 갈걸 그랬나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대형마트에서도 스스로 바코드를 체크하고 결제를 할 수 있다. 그나마 지금은 점원이 있는 계산대가 많고 선택할 수도 있지만, 언제 점원 계산대가 없어질지, 아니면 점원이 줄어 몇 개 남지 않은 계산대에서 긴 줄을 서야 할지 모른다. 물론 디지털 문화에 어두운 일부가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셀프가 싫어요’를 외쳐댄다면, 아마 안락하고 멋있는 커피 전문점을 잊어야 하고 휴게소의 식사도, 계산대 선택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변하는 환경엔 적응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보다는 그런 불편함을 잊게 해주는 동네 커피가게(커피를 가져다주고 열 잔이 되면 한 잔이 무료)가 있음을 나는 무척 고마워하고 자주 간다.

지불하는 대가가 적은 것 같지도 않지만 일자리는 줄어드는 추세이고, 어쨌거나 불편함은 각자의 몫이니 불평보다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작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775만 명으로 전체의 15.5%를 차지하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디지털 정보 격차를 조사했는데 일반 국민 대비 저소득층은 87.8%, 고령층은 64.3%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과 무인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준비가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정보 취약계층이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이용역량 강화, 차별없는 환경 조성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하니 기대해 본다.

때맞춰 광주가 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한다. 연구개발과 제품 생산, 그리고 인력양성 등이 산업을 육성하는데 필수적인 정책들이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형 인공지능 산업이 육성되었으면 좋겠다. 재정에 여유가 없거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도 변화하는 시대의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살아가는 환경을 개선하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먼저 했으면 하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지원해서 개발하는 첨단기술과 제품은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이 일부에 그쳐서는 안된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첨단기술 개발과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제품을 서민들도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려고 할 때 지방정부의 개입은 당위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개발된 제품은 공공기관이 먼저 구매하고 이를 일반시민에게 제공하는, 우선 구매사업이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언택트 시대라고 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소 멀어진들 어떤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삶이 흥미롭고 풍요로워지고, 그래서 시민들이 광주에서 살아가는 것을 즐거워하게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