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참으로 무던하게 살았다. 마치 성인지 감수성이 탑재되지 않은 인간처럼. 때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 했던 적도 많다. 성희롱을 인지했지만 말꼬리를 늘어뜨리기 싫거나, 대립하길 원치 않아 참아 왔던 때가 부지기수다. 우리는 2년 전 미투(Me too)운동을 통해 쉽게 발현되지 않았던 ‘여성’이라는 연대의 힘을 경험했다. 목소리를 내었고 기성세대의 인식과도 맞서 싸웠다. 정치인들은 물론, 경제·문화·사회 전반의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저명인사들이 다수 몰락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미투 운동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삭제해 버렸을까. 최근 광주시립극단 여름공연 ‘전우치’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성희롱 발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공연 연습 때 부상을 입은 배우에게 무대감독이 “그러니까 살을 뺐어야지”, “얼마나 무거웠으면 발이 부러지냐”, “네 다리통을 봐라” 등의 말들을 한 것.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낀 배우는 이 사건에 대해 광주문화예술회관 측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며, 무대감독은 이 사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후 배우와 무대감독의 분리 조치는 진행됐으나, 아직 어떠한 징계도 내려지지 않았다. 배우 측은 “알릴 수 없는 더 많은 성희롱 발언들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광주연극계 내 이들의 위치다. 배우는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인 반면, 무대감독은 나주와 광주의 연극협회에서 요직을 지내 사실상 지역 연극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에 대한 꿈을 안고 막 시작한 이에게, 이런 출발을 안겨준 문화계의 썩은 관행이 참으로 씁쓸하다. 아직도 문화계에선 무질서하고 비상식적인 행동과 발언들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선 더 그렇다.

‘공연 전 소통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거나, ‘이게 무슨 문제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감히 충고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친근감의 표현이든 비아냥이든, 너무 쉽게 내뱉었던 말들은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이제 ‘뚱뚱이’라 부를 수,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