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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평화도시 역사 바로 세운다
단죄문·안내판 문안으로 본 ‘일제 식민지 잔재물’
양파정·습향각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현판 남아
화정동 지하동굴 일본 군용비행기 연료 저장 추정

2020. 08.13. 19:46:26

광산구 소촌동 ‘송정신사’
서구 화정동 ‘지하동굴’

남구 사동 ‘양파정’

광주시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기념해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잔재 청산 T/F를 구성·운영했다. 그 결과로 ‘일제 식민지 잔재물’들을 밝혀냈다. 단죄문 및 안내판 문안으로 그 내용을 간추린다.

▲송정신사 잔존물(광산구 소촌동 산 4-1)=일제강점기 동안 식민통치에 활용된 시설물이다. 일본은 일왕(日王)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는 등 군국주의적 침략정책과 식민지 지배에 이용했다.

송정신사는 1941년에 세워졌으며, 신사에는 신전, 배전(기도하고 참배하는 곳), 사무소, 신찬소(신령에게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곳) 등 4개 건물이 있었다. 현재 신전과 신찬소는 없어지고, 배전과 사무소만 남아있다. 한국내에 남아있는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목조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배전은 1948년 학교법인 정광학원이 개보수해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일본식 창호인 격자무늬 형식의 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해 현재 금선사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석등롱 역시 신사의 부속물이고, 금선사 입구의 나무아미타불탑도 원래는 황국신민서사탑이었다. 정광학원은 금선사 일대를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하동굴 1, 2, 3(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회관 주변, 서구 화정동 512)=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지하시설로서 옛 광주비행장 활주로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져 있다. 광주비행장에서 사용할 일본 군용비행기의 연료를 저장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입구와 출구가 분리돼 있고 환기가 잘돼 습기가 차지 않도록 설계됐다.

지하동굴 1은 일본 광주항공기지 부속 연료창고로 1945년 8월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형 동굴로 바닥은 배수로가 없고 동굴 입구로부터 19m와 45m 지점 좌우측에 장방형의 구조물이 있다. 총길이 55.65m, 높이 2.74m, 너비 바닥은 2.35m, 중간은 2.75m다.

지하동굴 2는 ‘―’자형 동굴로 바닥은 배수로가 없고 동굴 입구로부터 20m와 60m 지점에 장방형의 구조물이 있다. 출입구는 평아치로 이루어졌고 내부는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다. 총길이 81.95m, 높이 2.82m, 너비 바닥은 2.26m, 중간은 2.74m다.

지하동굴 3은 ‘―’자형 동굴로 양쪽바닥에 각각 20cm 너비의 배수로가 있다. 총길이 64.04m, 높이 바깥쪽은 2.83m, 안쪽은 3.45m다. 너비 바깥쪽바닥은 2.25m, 가운데는 2.75m, 안쪽바닥은 3.90m, 가운데는 3.98m다.

▲양파정 누정현판(남구 사동 177)=친일 반민족행위를 한 정봉현, 여규형, 남기윤, 정윤수 친일인사 4명이 쓴 현판(시문)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정봉현(1851-1918)은 전남 곡성 출생으로 일본 왕 다이쇼 즉위를 축하하는 글을 바치고, 일본 왕세자 즉위 축송문을 지어 바치는 등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했다.

여규형(1848-1921)은 경기 양평 출생이다. 다이쇼 즉위를 찬양하는 글을 바치고, 왕세자 즉위를 축하하는 송축시를 ‘경학원잡지’에 게재했다. 총독 사이토의 관저에서 열린 시회에 참석해 수창했다.

남기윤(1879-?)은 경남 출생으로 경무총감부 경부, 조선총독부 경찰관강습소 조교수 등을 지내고 다이쇼와 쇼와(昭和)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정윤수(1871-01921)는 조선총독부 직속기구인 경학원 사성에 임명돼,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고, ‘경학원잡지’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

▲원효사 부도비·부도탑(북구 금곡동 산 209-13)=송화식(1898=1961)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변호사로 맹휴투쟁 당시 학생들을 변호하기도 했지만, 이후 적극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

1938년 내선일체를 강화하고 반국가적 사상을 뿌리 뽑기 위해 조직된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광주지부 간사로 활동했다. 1941년 9월 전시체제 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전쟁에 최대한 동원하기 위해서 조직된 전시 최대의 민간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전남지역 발기인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43년부터 전쟁에 대한 협력과 조선 민중에 대한 강력한 통제, 전쟁 뒷바라지 활동 등 각종 문제를 논의하고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 최대의 관변 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로 활동했다.

1944년 9월에는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고 징병과 징용, 군사기지 건설에 필요한 인력 동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국민동원총진회’ 이사로 활동하는 등 친일 반민족행위에 앞장섰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다.

서구 세하동 ‘습향각’

▲습향각 현판(서구 세하동 274-1)=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신철균, 남계룡 친일반민족 인사 2명이 쓴 시문이 있다.

신철균(1899-?)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화순군과 광산군의 공무원 재직 중에 중일전쟁과 관련한 국방헌금 모금, 군용물자 조달 공출, 여론 조성과 국방사상 보급·선전 등 전시업무 수행 공로로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남계룡(1895-?)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곡성군수와 광산군수 재직 중에 중일전쟁 관련 군인과 유가족 후원, 전사자 위문, 여론 조성과 국방사상 보급·선전, 국방헌금 모금, 군용물자 조달 등 전시업무 수행 공로로 역시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이 등재됐다.

동구 선교동 ‘너릿재 시비’
▲너릿재유아숲공원 무등을 보며 시비(동구 선교동 482)=서정주(1915-2000)는 전북 고창 출생으로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는데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

1942년 7월 매일신보에 평론 ‘시(詩)의 이야기 - 주로 국민시가(國民詩歌)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 대열에 합류했다. 1943년 11월 16일 매일신보에 ‘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1944년 8월호 ‘국민문학’에 발표한 ‘무제 -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사이판 등지에서 일어난 일본 병사들의 죽음을 찬양하는 작품이다.

1944년 12월 9일 매일신보에 발표한 ‘마쓰이오장 송가(松井伍長頌歌)’는 한국인 출신 소년 비행병으로 제일 먼저 가미카제 특공대로 나가 사망한 인재웅(창씨개명, 松井秀雄)이 일본을 위한 자기희생인 양 추모하는 내용이다. 서정주는 이 외에도 수 많은 일제 찬양 글을 지어바쳤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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