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봅니다. 그 속엔 어김없이 내 얼굴이 있습니다. 화장을 할 때나 머리를 매만질 때 아침에 눈 부비며 시작해서 잠들기 전 하루의 마무리도 거울 앞에서 합니다. 오직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이 볼 수 있는 내 모습입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남이 나를 보듯이 내가 나를 보고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초로의 여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보았을 것인데 내 머릿속에 저장된 젊은 날의 영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과정이 없는 얼굴이 내 앞에 있습니다.

거울 앞에선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사라져버리는 지극히 시각적인 현재 진행형이어서 일까요. 거울을 보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잠을 청할 때나 명상을 할 때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하면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울 앞에선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있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아마도 보이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게 되는 가 봅니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보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나의 왼쪽 눈 아랫눈썹에 조그마한 검은 점이 있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께서는 눈물받이 점이라며 걱정하면서도 눈동자가 다칠까봐 뺄 엄두를 못 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눈꺼풀을 당겨보며 확인해 보곤 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눈 속의 점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거울을 보면 슬퍼졌습니다. 눈물을 가져오는 슬픔의 씨앗이 눈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초등학교 일학년인가 국어시간이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비’라는 동시였습니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선생님은 비가 어떻게 동그라미를 그리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진 자국에 동그라미가 생겨서 점점 커진다는 대답을 하여 칭찬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다녔던 중앙국민학교는 본관과 일학년 교실인 별관 사이에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일 주일 씩 교대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정오가 지나면 등하교 아이들이 섞여 연못 주변이 혼잡했습니다. 나는 연못가에 있는 바위에 앉아 줄을 서서 놀고 있는 오리 떼를 바라보다가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일러복을 입은 단발머리 내 얼굴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오리가 지나가고 잔잔해지면 내 얼굴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눈 속의 점도 의식하지 않은 연못에 비치는 내 얼굴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 영상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마음을 담아서였을까요. 비가 내리는 자리의 동그라미도 그때 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뜻대로 결혼을 하고 피부과에 갔습니다. 너무 쉽고 간단하게 점을 뺐습니다. 가슴 속에 있는 슬픔의 덩어리를 도려내듯이 참으로 홀가분해졌습니다. 비로소 마음과 거울이 만들어 낸 아픔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거울은 집안 곳곳에 있습니다. 벽걸이, 스탠드, 화장대, 핸드백속의 손거울 등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봐 주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장식용에 불과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우연히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 앞에선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고급 저택의 화려하게 장식된 남의 거울 앞에서도 내가 보면 내 거울이 됩니다. 거울은 주인이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보여주는 거울을 보면서 마음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외모를 가꾸듯이 마음도 곱게 다듬고 가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순박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요원한 꿈일지 모릅니다. 보기 좋게 포장된 이면에 언뜻언뜻 보이는 속마음을 훔쳐보다가 실망과 배신감으로 잠을 못 이룰 때는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만큼만 보기로 했었습니다.

마음이란 정신세계의 광범위한 철학, 종교, 심리학적인 해석이 아닌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뜻으로 말하더라도 얼마나 복잡다단한 것입니까. 나도 내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해맬 때는 황당하기도 합니다. 사람 따라 상황 따라 변화무쌍한 마음은, 멈추지 않은 시간의 흐름 같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인지 모릅니다. 마음이란 작게는 바늘도 안 들어가는 소심함도 있고 크게는 우주도 품어 안을 수 있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도 있고 종교도 있는지 모릅니다.

거울을 봅니다. 나와 내가 만난 자리입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보는 나를 내가 보고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든 형상은 눈으로 보고 있지만 마음을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울은 몸과 마음, 영과 육이 만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바로 잡듯이, 마음에도 종교나 윤리 양심이란 거울이 있어 끊임없이 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있는 선과 악, 시기, 질투, 사랑도 결국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닦는 일이 세상의 거울을 맑게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김재유 약력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 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남도수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