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지역
사람들
오피니언
TV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노무현 서거 11주기…광주와 각별한 인연 재조명
5공 청문회 스타덤…대선 레이스 ‘노풍 진원지’ 각광
재임기간 해마다 5·18 기념식 참석 광주 사랑 드러내

2020. 05.24. 18:49:37

헌화·분향하는 권양숙 여사
지난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권양숙 여사가 헌화·분향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1주기를 맞아 광주와 각별한 인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무명 정치인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5공 청문회’를 비롯 절대 열세였던 대선 레이스에서 극적인 반전의 시발점 지역인 광주는 노 전 대통령과 숙명과도 같은 정치적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서거한 지 11년이 흘렀지만 지역 갈등을 넘어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사랑한, 광주가 사랑한 대통령 ‘노무현’이 재소환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에 나서고 광주에 주목한 계기 중 하나는 80년대 부산에서 구속된 학생들을 변론하면서다.

지난 2004년 전남대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 학생들한테 왜 잡혀왔냐 물어보니까 광주학살의 진상을 부산시민들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죄목이었다”며 “그때부터 광주는 우리의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정작 무명이었던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세간의 주목을 끈 사건은 1988년 국회에서 열린 ‘5공비리·광주특위’ 청문회였다.

젊은 초선의원 노무현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뻔뻔한 모습을 보이던 전두환 일당을 향해 빈틈없는 논리로 공격해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됐다.

전두환 일당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진술을 하도록 끌고간 뒤 핵심을 찌르는 송곳같은 질문은 광주시민들의 한을 풀기에 충분했다.

1990년 지역갈등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른바 김영삼·노태우·김종필의 ‘3당합당’ 당시 통합을 반대하며 고군분투한 것도 강렬했다. 그는 3당합당은 ‘호남을 고립시키는 분열의 결단’, ‘야합’이라며 정치 인생의 길을 열어줬던 김영삼의 곁을 떠났다.

이후 14대 총선에 부산 동구에 출마해 낙마하고 16대 총선에서 지역갈등 해소와 동서통합을 위해 부산지역에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하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광주는 그런 노무현을 껴안았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광주는 영남 출신의 노무현을 선택하며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진원지가 됐다.

당시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해 3월16일 열린 민주당 경선 세번째 지역인 광주에서 노 후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7.9%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선두를 달리던 이인제 후보가 31.3%로 2위, 한화갑 후보는 17.9%로 3위에 그쳤다. 정치권에선 이를 ‘3·16 사건’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광주에서 분 ‘노풍’은 국민경선의 짜릿한 드라마와 함께 ‘단기필마 노무현’을 16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보답을 아끼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하며 한국전력 본사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에 보냈다. 아시아문화전당, 호남KTX 착공도 전폭 지원했다. 호남 출신 장관도 전폭적으로 기용했다. 참여정부 호남 출신 장관은 30%로 역대 최고 비율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해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며 광주에 애정을 드러냈다. 2003년 5·18 23주기 기념식 때 학생들의 시위로 5·18묘지 후문으로 입장하기도 했으나 5년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다.

2007년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담양의 한 온천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무등산을 찾아 등반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광주시민들이 광주정신이 깃든 무등산에 오를 것을 권유하자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시면 무등산에 오르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직 중 무등산을 찾은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광주시민들은 5월19일 현직 대통령 최초로 무등산 산행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2011년 11월 ‘무등산 노무현길’을 지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 머물면서도 광주를 찾았다. 2008년 4월20일 광주지역 문중대제 참석을 위해 광주에 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강물처럼’이라는 여운을 담은 글귀를 남겼다. 그게 그의 마지막 광주행이었다.

“5·18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가장 생각이 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중항쟁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광주MBC와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채만 기자

광주매일 TV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