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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신의 상징, 최흥종과 5·18
홍인화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연구실장
국제학박사

2020. 02.06. 20:11:58

올해는 5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5월 광주는 여전히 규명해 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씻을 수 없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한국 민주화운동의 출발점, 기폭제로서 자랑할 만하다. 부당한 독재정권의 무력에 격렬하게 저항하면서도 도덕성과 헌신성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모범적인 사회변혁투쟁이었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민주화 역사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자리매김돼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광주정신은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시민의 생활 속에 그리고 광주지역 곳곳에 흐르던 것이 5·18을 통해 발현된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뿌리를 이루는 대표적 인물이 오방 최흥종 선생이다.

최흥종은 1880년 광주시 불로동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 최흥종은 서양 문물에 적대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를 서양문물로 여겨 선교사들에게 막연히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교사들이 동네 저자거리의 왈패였던 최흥종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유진벨, 포사이드 등 선교사들이 바다를 건너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모습에 최흥종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최흥종은 점차 술과 담배를 끊고, 기독교에 입교해 과거 생활을 청산한다. 1904년 광주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에 근무하며 우일선, 포사이드 선교사와 함께 한센병 치료를 돕는다. 최흥종은 희생과 헌신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최흥종은 3·1운동 당시 광주지역 총책으로 민족운동에 뛰어들어 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만세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1920년대 후반에는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신간회’ 광주지회장을 역임하고 해방 후에는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위한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벌인다. 최흥종의 저항활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자, 부당한 폭력과 압제에 저항하여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켜내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항이기도 했다.

오방은 결핵환자와 한센병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냉대를 받는 자들과 빈민을 돕는 구제활동에 힘쓴다. 1920년 기독청년들의 모임인 광주지역 최초의 시민단체인 광주YMCA를 설립한다. 이는 나눔의 실천을 광주지역에 조직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올해는 광주YMCA의 100주년이다. 광주YMCA건물은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등장하듯, 1980년 5월 광주의 핵심배경으로 항쟁지도부의 주요 옥내집회 장소였다. 도청과 함께 최후의 항전지였고 현재까지도 광주정신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소통과 참여로 광주YMCA가 일구어온 열매를 더듬어 보면 최흥종이 광주정신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를 지켜본 수많은 정치인들이 오방에게 정치입문을 권유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예수 제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광주 무등산에 기거하며 끝없이 사회 곳곳의 불의와 폭력, 부당함과 아픔을 찾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회복하기 위해 평생을 보냈다. 광주지역 첫 장로이자 목사로서도 활발한 선교활동과 교육운동에 전념했던 최흥종의 장례식은 1966년 5월18일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최흥종의 나눔, 헌신, 사랑, 저항 정신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맞물리며, 이웃사랑이라는 기독교 정신과 깊게 교감하고 있다.

호남 기독교인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에 영향을 끼친 광주민주화운동의 세계사적 중요성과 오방정신과의 관계를 깊이 알아차리고 공부하며 어떻게 계승해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2020년, 호남이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호남기독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오방 최흥종은 그 사명의 실천에 가장 훌륭한 길라잡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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