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과 연변말의 차이를 말할게요.’ ‘왜, 안’을 ‘어째,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 지린(길림)성 엔지(연길)시 엔벤(연변) 출신으로 하이난(해남)성에서 살고 있는 37살 청년의 이야기다. 20대 초반엔 서울생활도 1년여 했다. 그렇게도 예쁜 여자, 맛있는 꼬치, 좋은 옷을 이전엔 보지 못했다. 서울아가씨를 사귀고 싶은 꿈이 시작됐다. 어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던 여대생과 뜻이 맞았다. 그녀의 꿈도 서울남자를 만나는 거였다. 새 양복을 사 입었다. 수원 먹자골목에서 누가 먼저 다운시킬 것인가를 내기라도 하듯 맥주에 소주까지 추가했다. 그러기를 한참 후에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어째 그리 보오.’, 이건 아닌데? 따지고 따져보니 중학교 1년 후배였다. 서로를 속였던 인연이 사랑으로, 첫 출산을 기다리는 예비 아빠가 되었다.

그의 선대는 경상도 어디에서 청주한씨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이주했다. 조부의 선택이었다. 전쟁을 한다며 1년에 한 번씩 나타나 6남매를 낳게 하곤 소식이 끊겼다. 그는 그런 얘기만 들었을 뿐, 확실한 이유를 몰랐다. 나는 독립군이었음이 틀림없다고 했다. 당시 그들은 저녁에 왔다가 새벽에 떠나면서도 가족에겐 무슨 일인지를 말하지 않았고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으며, 동지들끼리도 서로 어디 출신인지를 몰라야했다. 일경에 걸려들면 온 집안이 큰 후환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장렬히 산화했건만 그를 데려다 줄 곳이 없었다. 그저 그 땅 어디엔가 묻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런 조부를 ‘어째 여기서 우리를 개고생하게 했을까? 서울은 이렇게도 좋은데…’ 하면서 미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분이니 더 이상 그러면 안 된다하며 경북 안동에서 많이 이주해갔으니, 한번 찾아가보라고 했다. ‘정말이요, 인터넷에 나올까요?’라며 관심을 가졌다. 그의 뿌리 찾기가 기대된다. 이런 일에 정부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역경과 희생을 치른 선열에 대한 보은이다.

그는 중국 국적이지만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부모와 누이는 수원, 처가는 일본에서 이만큼 살게 된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 서울로 오라했더니, 지금이 좋다고 한다. 아쉬움도 표했다. 그동안 벌어서 고향(연변)에 집을 샀더니, 하이난은 순식간에 100배가 올라버렸단다. 관광과 자유무역항 개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소득자의 해외관광이 더 늘 것이니 관광회사를 설립해보라고 했다. ‘수원인해남’ 간판을 달고, 과거 서울에서 번 2천500만원을 고향(연변) 친구들에게 술밥을 사며 이십여 일 만에 뚝딱 써버렸던 배짱으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했다.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이요? 그렇게 해볼게요.’ 그의 어릴 적 꿈은 큰 세탁기를 사고 큰 집에서 사는 거였다. 해남에서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늘 허전하다. 남북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어째 그대만의 바람이겠는가라고 답했다.

해남(海南)은 남쪽 바다라는 의미다. 우리는 고려(918-1392) 이전부터, 중국은 원(1271-1368)대부터 부르던 지명이다. 그 이전에 장보고(?-846)가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때가 있었다. 혹여 그때 그가 붙인 이름이 아닐까? 추측의 눈을 넓혀본다. 하이난은 1998년 광둥(광동)성에서 분리됐다. 동서 260㎞, 남북 210㎞.로 제주도의 19배인 3만4천㎢ 크기다. 북쪽 하이커우, 남쪽 싼야가 큰 도시를 이루며 천만 가까이 산다. 최근 10여 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밤이 잘 줄 모른다.

그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천석이 넘는 공연장을 만들어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재주는 누가 고안했을까? 산꼭대기까지 찻길을 내고 숙박시설을 앉히는 일에 환경단체의 반발은 없었을까? 자연을 이용하고 즐길 줄 아는 그들의 지혜를 한번쯤 가서 볼일이다. 배울 건 배우자는 거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무안국제공항에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