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래돼 곧 벗겨질 것 같은 파란 페인트칠, 가로수에 가려진 간판, 생각보다 작은 규모, 허름한 외관…. 미국 뉴욕 맨해튼 로워 이스트 사이드에 자리한 독립서점 ‘블루스타킹스’(Bluestockings)가 준 첫 인상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확 달라진다. 서가에 비치된 도서들의 강렬한 제목과 이미지는 서점의 특색을 말해주는 듯 하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각자의 프로젝트에 심취해 있어서다. 여타 독립서점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다.

‘블루스타킹스’는 인종문제, 반 자본주의, 페미니즘, 진보정치, 사회운동, 퀴어(Queer·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 등의 서적들을 다루는 비영리 독립서점이다.

1993년 캐트린 웰시(Kathryn Welsh)가 여성을 위한 서점이자 사회활동가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블루스타킹스’라는 서점 이름은 18세기 영국 여성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기 위해 결성한 ‘블루스타킹스 소사이어티’(Bluestockings Society)에서 따왔다.

이곳을 방문한 때는, 운 좋게도 뉴욕에서 촉발된 성 소수자 운동 ‘스톤월(StoneWall) 항쟁 5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였다. 성 소수자의 저항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맨해튼 곳곳에 걸려 있었고, 전 세계 성 소수자들이 사상 최대 규모로 모인 ‘월드 프라이드(World Pride) 퍼레이드’가 열리는 주간이었다. 블루스타킹스 내부 곳곳에도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사회활동가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는 블루스타킹스는 현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으로 이야기하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젊은 커뮤니티다.

얇은 출판물 안에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당대의 이슈를 담아내는 블루스타킹스의 자랑 ‘진’(Zine) 매대.

사회를 뒤흔드는 하나의 사안이 터졌을 때, 이곳은 책방의 한 칸을 통째로 해당 주제에 할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17년 ‘미투(Me too) 운동’이 화두가 됐을 때 이곳은 온통 그 이슈에 몰두해 페미니즘 서적으로 채웠다. 또한 성폭력 생존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그룹의 대화를 다루는 세션, 성폭력 상황에서 자기방어법 워크샵 및 관련 서적(‘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Roxane Gay)의 책 ‘헝거’(Hunger))를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토크도 진행했다.

또한 2012년 미국에서 흑인 소년을 죽인 백인 방범요원이 이듬해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나면서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당시에는 흑인인권 서적으로 가득 메웠다.

다루는 서적의 장르·종류도 특별하지만, 이곳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의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색이다.

유급 직원은 두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세 번, 한 번에 4시간-7시간씩 이곳에서 머무르며 힘을 보탠다.

책 큐레이션부터 커피와 음료 판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호신술 수업·낭독회·워크숍·공연·토론·영화 상영) 일정까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계획한다.

특히 새로운 출판물이 나오는 주기와 시기적인 쟁점이 주요 기준이 돼 책을 엄선한다. 이 모든 것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나눈 대화와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물론 다양성, 사회운동, 여성인권, 성 소수자 인권, 급진주의 등을 다루는 책들을 우선순위로 한다.

이곳은 책을 팔아 이윤을 남기기보다는, 진보적 시각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1-2달러의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당대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사회를 만드는 이들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 뉴욕=정겨울 기자


“다양성 사회에 활력 불어넣는 게 우리의 일”

블루스타킹스 자원봉사자 코니 월든

“블루스타킹스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활동가들의 거점’이 돼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이 블루스타킹스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이 공간을 통해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뉴욕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계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죠.”

블루스타킹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코니 월든(Conny Wallden)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자원봉사자로서 주기적으로 이곳에 와 일을 한다는 그는 블루스타킹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원봉사자들은 3교대로 3-4시간, 직원들은 매일 6-7시간 일해요.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되죠. 장기적으로 보면 서점의 운영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아요. 비영리단체로 운영되는 서점이어서인지 오히려 서점의 창의성이 유지되고 점원들도 열의를 갖고 일합니다. 수익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죠.”

그는 블루스타킹스가 오랜 시간 뉴요커들에게 인기를 끄는 비결에 대해 설명했다.

“뉴욕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슈, 특히 페미니즘, 진보정치, 사회운동, 퀴어(queer), 인종문제, 반 자본주의 등의 현 사회의 급진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서점입니다. 사실 서적 자체는 ‘아마존’(Amazon·미국의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도 똑같이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에서 책을 사는 이유는, 이곳이 내뿜는 메시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소수자인) 당신을 생각하는 장소’란 의미에서죠. 블루스타킹스가 유지하는 커뮤니티는 독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제공한다고들 합니다. 그 덕에 실제로 여기서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자원봉사자가 되곤 하죠. 그들이 다시 책을 내고, 이벤트를 제공하는 좋은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어요.”

특히 그는 블루스타킹스에서 다루는 ‘진’(Zine·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만든 얇은 출판물)에 대해 강조했다.

“블루스타킹스는 다양성(성 소수자 인권·여성인권·인종의 권리 주장) 운동이나 무정부주의 등과 같은 현재의 이슈, 동시대의 운동에 대해 출판물로 당대의 기록을 남깁니다. 두꺼운 서적뿐만 아니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진’을 주제가 업데이트 되는대로 구비하고 있습니다. 잡지의 특성 상 얇고 주제 또한 조금 더 세부적이면서도 유연하게 다가갈 수 있다 보니 두터운 팬층과 매니아층을 자랑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뉴욕의 독립서점 문화에 블루스타킹스가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냈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블루스타킹스는 여태까지 많은 변화들을 직·간접적으로 이끌어 왔고, 그것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 돼 왔어요. 이런 서점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면 뉴욕 사회에 다양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