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2천500여년 전의 동양 고전 <도덕경>에서도 21세기를 사는 우리 지역사회 주민자치의 원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노자가 꿈꾸었던 이상사회는 촌락공동체을 모델로 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작은 나라 적은 백성. 여기서 소국은 지역은 좁고 인구는 적어 나라라기 보다는 촌락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마을 내지 동네가 자치의 기본단위라는 것은 오늘날 자명한 사실이다. 행정 간섭은 최소화하고 자유방임에 가까운 무위(無爲)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 형태이다. 노자는 대국(大國)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若烹小鮮)’ 같이 하라고 했다. 너무 휘저으면 생선 본래 모습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법을 세세하게 만들거나 법을 자주 바꾸는 인위적인 정치는 오히려 백성을 혼란하게 한다고 보았다. 경제적 규제는 피하고, 행정 개입은 극소화하라는 뜻일 것이다. 노자가 바라던 이상적인 정치는 지도자(지방자치단체장)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이다(太上 不知有之). 단체장과 공무원들은 시민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 지역사회의 주인은 시장·군수가 아니고, 시민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쟁도 결코 쉽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에서 자율 조정될 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서로 다투지 아니하여 이 세상에서 으뜸으로 좋은 것이다. 물의 덕을 찬양하였다. 포용력, 융통성, 인내, 용기, 대의 등 물에서 배우는 덕목은 정신수양뿐만 아니라, 자치공동체를 구성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라고 본다.

한국의 치즈하면 전북 임실 치즈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임실에 서양의 치즈가 자리잡게 된 것은 벨기에 출신의 천주교 지정환 신부와 심상봉 목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지 신부님은 임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 산업을 일으키는 등 농민과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다 올해 초 88세로 선종하셨다. 1964년에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해 산양을 키우다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고자 치즈 생산에 나섰다.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1967년 마침내 임실에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을 만들고 치즈 농협을 출범시켰다. 임실 지씨라고 새로운 성씨를 만든 지 신부는 도덕경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가지고, 도덕경이 말하는 자치의 원리를 임실 마을주민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오늘의 임실 치즈마을을 탄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도덕경 17장에서, 모든 것이 다 이뤄졌을 때 주민들이 말하기를 ‘자기네들이 했다’고 말하게 지도자는 해야 된다고 하였다. 지도자는 자기가 다 했다가 아니라, 지도자는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다 했다’라고 해야 한다. 단체장들이 자기 업적을 홍보하는데 열 올리는 것을 보면 통탄할 일이다. 도덕경 8장에서는, ‘그들에게 가라, 그들과 함께 살아라. 그들에게 배워라. 그들을 사랑하라. 그들이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고 하였다. 특히 이 부분은 뼈아픈 말이다.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접근하고, 예산지원을 빌미삼아 줄을 세우거나 주민들의 자발성의 싹을 자르지 말 것이다. 주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주민에게 배우는 자세로 주민들의 자존감을 세워줘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고, 주민들도 집단지성이 있다. 전문가랍시고 설치지 말고, 마을자원을 조사하고 지역이 갖고 있는 것을 특화하여 주민들의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하여 주민의 자발성을 최대한 살리도록 하는 것이 자치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