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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차 이야기 (1) 오래된 것에서 만나는 향수
“그리운 것은 다관이 아니라 시나브로 지나간 세월이구나”

2019. 08.08. 17:42:41

삽화=담헌 전명옥
차에는 향기가 배어 있다. 그 향기는 슬며시 새나와 세상을 맑게 한다. 그리고 사람사이에 인연의 끈을 이어 준다.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나누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정겹다. 차의 온기가 향기가 따스하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차와 함께 40년을 생활해 온 가은다례원 김은숙 원장이 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본다. /편집자註
얼마 전, 서울시가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에서 1960-1980년대의 향수를 느껴보는 추억 체험행사를 열었다. 판잣집 테마존은 1960년대 서울시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청계천변 판잣집을 복원한 곳이다. 옛날 청계천에는 나무판자로 지은 집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 놀았다. 또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지금의 청계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을의 공동우물터처럼 소박한 곳이었다.

그랬던 이곳에 전시마당과 체험마당이 펼쳐졌다. 추억의 옛 교실, 음악다방, 구멍가게, 공부방, 만화방 등이 만들어졌다. 또 옛 시절의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흑백사진을 찍기도 했다. 체험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즐겨했던 뱀 주사위 놀이, 리어카 목마, 전자오락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등 옛 놀 거리와 여름날 더위를 날려주던 아이스께끼, 추억의 과자 등 옛 먹거리 체험이 진행됐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음악다방의 커피는 진했고 음악도 장르가 폭 넓지 않았다. 놀 거리도 단순했다. 하지만 순수함과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가끔 드라마, 영화, 디자인이나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고열풍이 불 때가 있다. 조금 촌스럽거나 소박하게 느껴지는 옛 유행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누구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를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무드셀라는 구약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인데 무려 969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나간 과거의 일을 기억할 때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음에 남겨서 몇 번이고 돌이켜서 생각해보려고 하는 심리가 강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아름답게 회상하면서 그리워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인 무드셀라에 빗대어 이런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모든 무드셀라에게 주어진 추억이라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김은숙 원장은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차문화대학원을 수료했다. 대일카네기클럽 제6대 회장, 제6기 광주매일신문 창조클럽아카데미 다도회 회장, 가은다례원 원장을 맡고 있다.

1979년 무렵에 내가 놀이터라고 생각하며 자주 다닌 곳이 있었다. 언론인 이강재 씨가 금호문화재단과 태평양화학에서 주관하곤 했던 행사였다. 태평양화학에는 하얀 백자에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 다기 세트가 있었다. 그것을 구해서 여러 해 동안 녹차를 우려 마셨다. 그랬더니 다관에 색이 착색돼 깨끗하지 않게 보였다. 나는 다기를 깨끗하게 씻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청결하게 사용해야 하는 줄 알고 밖에 내다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그 다관이 많이 그리워진다. 다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고 그 귀한 것을 왜 버렸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버린 것이 후회스러워 어쨌든 구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해봤는데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다관이나 잔을 보고 있으면 옛날 그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지고 어느덧 머릿속에서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연이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따금 그리워하는 것은 다관이 아니라 지나가 버린 세월이구나.’

지나간 시절은 참 이상한 힘이 있다. 아무리 나쁘고 힘들었던 것이라도 좋은 것으로 그리운 것으로 탈바꿈시키고 마는 힘이다. 그리고 차의 좋은 성분이 다관에 흔적들을 남긴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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