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결정되었지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확정된 최저임금은 금년보다 240원이 인상된 시간당 8,590원으로 월 소득으로 환산하면 179.5만원이 된다. 비혼 단일가구의 최소생계비가 208만원인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한 사람의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많게는 4명의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노동계의 반발은 현실적이다. 한편 경영계는 생산성의 증가가 없는데다가 수출의 경색 등 경영의 어려움을 들어 동결 내지는 삭감을 주장하였는데, 이번 결정은 이런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미한 임금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를 위해 공적인 지출로 간접임금을 늘려 보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32조는 최저임금제를 법률로 정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와 공익을 대표하는 각 9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의 수준을 1년 단위로 심의, 의결 한다. 이런 결정구조 하에서 노동계나 경영계 양측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도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이 짐작되어진다. 그럼에도 노동계나 경영계는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축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일단에서 경제의 어려움을 ‘기승전 최저임금’식으로 몰아가 모든 문제를 최저임금 탓으로 매도하거나, 심지어는 4~5천원으로 삭감해야 한다고 노동계를 무시하는 막말을 내뱉는 것은 사회적 결속과 연대를 헤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모든 정치적 투쟁은 사회적 무시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주장한다(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2011) 다양한 사회 문제로 야기되는 사회적 투쟁의 근본 원인은 사회적 무시에 저항하며 타인과 사회로부터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지속적인 상호인정을 통하여 긍정적 자아를 형성시킨다. 그러나 반대로 타인의 무시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무시하기 쉬우며, 이러한 부정적 자아 아래에서는 생존에 대한 의지까지도 포기하게 된다. 즉, 사회적 무시와 모욕은 자아 정체성에 대한 도덕적 위협이 되고, 이에 대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분노하게 되며, 마침내 그것은 폭동이나 봉기와 같은 사회적 투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얼마 전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타올랐던 촛불집회는 ‘나라가 국민을 무시했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주권적 존재로서 인정받으려 했던 인정투쟁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 투쟁도 그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하는 욕구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동등한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2011년 영국폭동이 발생한 토튼햄은 영국에서 가장 생활수준이 낮은 지역 중 하나로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인정투쟁이었다. 또한 노란조끼로 대변되는 2018년 프랑스폭동도 시작은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되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빈민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층민이 합세하여 울분을 토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한편 호네트는 오늘날 정의는 분배와 인정 모두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파하면서 분배를 인정의 표현으로 보고, 사회적 인정이 불평등한 분배를 보완하여 그 사회를 안정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강조 한다. 남해에 위치한 독일마을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기념관이 있다. 이 독일마을은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광부와 간호사의 노고를 인정하여 정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하여 만들어진 명소이다. 비록 취업을 위해 이역만리로 떠났지만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당당히 귀국한 그들의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계층에게는 무엇보다도 분배가 우선이지만 분배가 어렵다면 적어도 그들의 아픔과 희생을 인정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인정사회가 될 때 진정 노사가 화합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