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스물 두 번 째 괘는 산화비(山火賁)다. ‘비’(賁)는 꾸미는 것이다. 꾸미다 보면 속(內)이 빌(虛) 수가 있다. 그래서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것이다. 꾸밈은 좋으나 포장만 좋고 실속이 없다. 꾸밈의 겉포장만 좋고 실속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속임을 당할 수 있다. 상(象)으로 보면 화(火)는 문서이니 산 밑에 문서를 가지고 있으므로 공부하는 괘로는 좋다. 화(火)는 또한 병과(兵戈) 무기이니 전쟁괘라고도 한다. 핏물로 장식하는 괘가 되기 때문이다. 직업으로는 꾸밈이니 꾸미는 일과 관계있는 일을 하면 좋고 인테리어도 괜찮다. 또 비(賁)는 ‘무덤 분, 떨쳐 일어날 분, 열매 맺을 분’이라고도 한다. 산 아래 불이므로 산 아래 불이 밝게 비추는 상으로 문명을 밝히는 것이다. 산 밑에 불을 켜 놓고 공부하고 도(道) 닦는 것도 괜찮으나 불빛이 멀리 뻗쳐 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역위생괘(易位生卦)인 화산려(火山旅)는 산 위에 불이 여기저기 옮겨 붙여 다니는 상이 돼 떠도는 나그네라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자(孔子)께서 천하를 주유(周遊)하다가 평생 괘로 산화비괘 무동(無動)을 얻고 장탄식(長歎息)을 했다고 한다. 비괘(賁卦)는 울긋불긋 꾸미는 것으로 학문은 꾸밈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장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후로 칩거(蟄居)하면서 제자를 기르고 살았다. 그래서 공자 시대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당에서 공자 모시고 제사지내고 추앙을 받고 있다. 비괘(賁卦)는 학문하는 데는 좋으나 지금 당장 크게 이루는 것으로는 조금 어렵다. 꾸미고 치장한다는 것은 포장만 요란하게 한다는 것이니 내면이 꽉 차 있지 않고 내실이 허(虛)하다는 것이다.

산화비괘는 앞 괘인 이중유물(頤中有物)의 상인 화뢰서합괘를 거꾸로 한 도전괘(倒顚卦)로 서합괘와는 상이 비슷하나 이와는 관계가 없고 장식, 문식(文飾)이라는 뜻으로 본다. 턱 안에 물건이 있다는 상으로 보면 비괘(賁卦)도 내부에 일양(一陽)이 있고 다만 4효와 3효의 위치를 달리 할 뿐이다. 그러나 턱의 기능은 위턱은 움직이지 않고 아래턱이 움직여서 물건을 씹는다. 그래서 서합괘는 진하이상(震下離上)이나 비괘는 그 반대로 진상이화(震上離下)로 하괘가 이화가 돼 아래턱이 씹을 수 있도록 자유스러운 서합괘와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비괘는 서합괘와는 달리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본다.

비(賁)는 장식(粧飾), 문식(文飾)으로 꾸밈이다. 아름답고 단정히 꾸미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성정이고 사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행위이다. 내용을 숨기기 위해 표면만 장식해서 거짓 허식으로 꾸미는 것은 진실한 꾸밈(賁)이 아니다. 허식으로는 형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비괘의 단사에 진실로 꾸미는 것은 사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니 ‘비형’(賁亨)이라 했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을 예쁜 그릇에 놓고 맛있게 먹는 것이 비(賁)이지만 음식이 맛이 없는데 접시만 지나치게 예쁜 것을 가져와서 자랑한다면 그것은 이미 비(賁)가 아니고 허식인 것이다. 비(賁)의 진실함은 이러하지만 어쨌든 내면의 가치 이상으로 꾸미고 장식하는 성향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역시 단사에서 ‘꾸미는 바가 있으면 조금 이롭다’해 ‘소리유유왕’(小利有攸往)이라 훈계하고 있다.

비괘(賁卦)의 상하괘 간의 관계를 보면 상괘 간괘(艮卦)는 막혀 정지 침체해 있지만 하괘 이화(離火)는 만족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층부에 별 관심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층부가 나서서 침체해 가는 상층부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런데 상층부는 간괘로 멈춰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분위기만 바꾸기 위해 ‘꾸며라’는 의미에서 비괘(賁卦)라 한다. 상하괘 간의 상을 보면 산 속의 사나운 맹호가 암석바위에 기대고 있는 맹호고암지과(猛虎靠岩之課)요 성문 안에서 아름다운 미인들이 경쟁을 벌리고 있는 문내경미지상(門內競美之象)이며, 빛나고 밝은 빛이 문창으로 비추는 광명통태지상(光明通泰之象)이고 밝음이 산에 가려 빛이 멀리 가지 못하는 명불급원지의(明不及遠之意)의 모습이다.

비괘의 괘사(卦辭)는 ‘비형 소리유유왕’(賁亨 小利有攸往)이다. 즉 ‘꾸밈은 형통하다. 꾸미는 바가 있으면 다소 이롭다. 외괘 간산(艮山)은 멈춰 서 있는 산이고 내괘 이화(離火)는 아름답고 빛나는 불이다. 산 밑에서 불이 강하게 빛나고 있으니 모든 만물이 아름다운 색깔로 빛난다. 화(火) 그 자체가 이미 빛나고 있는 밝은 것이지만 그 빛을 조영(照映)할 수 있는 것이 있어 그 밝음이 아름다움을 한층 더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한 물건에 붙어서 본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로 비(賁)다.

단전(彖傳)에서는 소성괘를 주로 하지 않고 주효에 해당하는 문식(文飾)의 기초인 이화(離火)의 중효(中爻)를 중심으로 해 괘를 본다. 중효 이효인 음(陰)은 어디에서 왔는가. 비괘(賁卦)는 삼양삼음괘(三陽三陰卦)로 지천태괘(地天泰卦)의 2효가 상효로 올라가고 상효는 2효로 내려와 교대생괘(交代生卦)한 것이다. 즉, 태괘(泰卦)의 내괘 건중(乾中) 일양이 위로 올라가서 외괘 곤(坤)의 유(柔)를 장식했다. 태(泰)는 태평무사한 시대로 세상이 태평하면 문물이 흥하고 소위 문화가 높아지기 때문에 비(賁)가 태(泰)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문화에는 사치 풍조가 있으니 이를 훈계하기 위해 소리유유왕(小利有攸往)이라는 효사가 있다. 서괘전에서 서합괘 다음에 비괘를 배치한 이유에 대해 ‘합이라는 것은 씹고 깨물어 합하는 것이나 사물은 진실로 합해서만 오래갈 수 없다. 그러므로 비괘로 이어 받아 꾸민다고 해 서합합야 물불가이구합이이고 수지이비 비자 식야’(嗑者合也 物不可以苟合而已 故 受之以賁 賁者飾也)라고 한다. 즉, 비(賁)가 서합의 뒤에 배치한 것은 서합이 물건을 씹어서 그것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장식해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서는 ‘산 아래 이화의 밝음이 있는 것이 비이다. 군자는 화의 밝음을 산 밑에 비춰 밝은 정치를 펴고 감히 옥사를 처결하지 않는다’(山下有火賁 君子以明庶政 无敢折獄)고 한다. 즉 산 아래 불이 있는 것이 비(賁)이니 군자는 문식(文飾)으로써 문화문명(文化文明)의 마음을 가지고 감히 옥을 쓰지 않고 웬만하면 방면해 옥에 가둬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합괘나 비괘는 법에 대한 괘효사로 서합괘는 무거운 벌로 옥에 가두고 비괘는 조금 가볍고 오래 감옥에 두지 않는데 반해 뇌화풍괘에서는 무거운 중죄에 해당한다.

점해 비괘를 얻으면 일반적인 견해로는 서합과 관련해 턱 안에 이물질이 있는 괘로 본다. 사업은 너무 꾸며 허세를 부려 실패할 우려가 있고 사업 추진에서는 장해가 일어나기 쉬우나 장애를 극복하는 수단이 서합처럼 강한 힘을 이용할 수 없으며 내면적 고통은 한층 심하다. 상대는 외모의 치장이 너무 심해 허세를 부리고 있고 내면을 감추기 위해 아름답게 화장해 좋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비괘는 산 아래 불이 있는 상이니 밝음이 멀리가지 않아 중차대한 일은 다음을 기약하고 준비해야 한다. 문내(門內)에 문화문명이 멈추는 상이니 밖에서 이득을 구하기보다는 안에서 적은 이익을 찾아야 하고 맑음으로써 평안을 얻도록 해야 한다. 거래, 교섭, 사업, 바라는 바 등은 소사(小事)는 길하나 대사(大事)는 방해가 있어 손해를 입는다. 혼인은 삼양삼음괘로 이미 이야기가 진행돼 승낙이 있거나 정교(情交)가 있을 수 있으나 아직은 이르다. 임신은 회임(懷妊)했으나 출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기다리는 것은 종괘(綜卦)의 서합으로 미뤄 보아 비지서합(賁之綜卦)장애가 있어 오기 힘들고 가출인은 이성문제로 집을 나가 밝은 곳이나 어두운 곳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분실물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형상으로 봐 상자, 분갑, 불단 등 쌓여있는 물건 밑에 있다. 병은 삼양삼음괘로 지천태의 안태로움에서 오고 꾸미고 있는 뜻에서 화류병이다. 또한 서합과 같은 병증으로 본다. 날씨는 맑았다가 흐린다. /동인주역명리학당(062-654-4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