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明)하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다. 에메랄드빛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실 정도다. ‘스카이 블루’가 어디서 유래됐는지는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청량감이 기분 좋게 폐부를 자극하는 계절이다.

날씨가 좋다보니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을 찾는 어르신들도 타운 주변을 산책하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 마주치는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청명한 가을하늘과는 다르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 어르신을 뵐 때가 많다.

일자리 때문이다.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지,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어르신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일자리 걱정이 크다. 일자리를 가져야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살 터인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라는 하소연이다.

연금을 받는 한 어르신은 “내 몫이라도 나눠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어르신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기업의 ‘대물림 채용’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광주형 일자리’로 이야기가 옮겨 갔다. 현대자동차가 광주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생기니까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뉴스를 보니 초임 평균 연봉이 3천500만원이고 여기에 주거와 교육, 문화 같은 복지혜택을 준다는데 그만한 일자리가 광주에 어디 있느냐는 얘기다.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알고 계시고 이런 조건인데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일자리가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와 광주시는 일자리 만들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1호 지시가 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고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용섭 광주시장도 취임 첫 결재가 시장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시장은 특히 민선 7기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만들어 4년 동안 일자리 10만개 창출과 고용률 68%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일자리 담당부서를 일자리경제실로 확대 개편하고 일자리 예산을 20%까지 확충하기로 했다.

민선 7기 광주시 노인복지 정책의 비전도 일자리 제공에 있다. 노인복지정책의 방향을 기존의 ‘수동적 돌봄’에서 일자리 제공 등 ‘능동적 복지’로 전환하고 일자리와 돌봄, 여가 지원 등을 중심으로 복지정책을 세워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결국 우리사회의 모든 관심이 일자리에 모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노사민정의 대타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국정과제로도 선정된 광주형 일자리가 그 출발점인 광주에서 시험대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를 청년 실업의 해법으로 보고, 전국으로 확산시켜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본 궤도에 올라 현대차가 빛그린산단에 완성차 공장을 지으면 당장 정규직 청년 일자리 1천여개가 새로 생긴다. 1인당 주 44시간을 기준으로 하니까 일감이 증가하면 추가로 채용 인력이 늘어난다.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는 자동차산업의 후방효과를 감안하면 신규 일자리 창출은 훨씬 커진다.

우리에겐 광주형 일자리를 고유명사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광주라는 이름이 붙은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광주에서 성공시키지 않으면 어디에서 성공시킨단 말인가.

벌써부터 군산 같은 도시는 광주형 일자리를 군산에서 성공시키겠다며 현대차에 러브콜을 보낸다는 소리가 들린다. GM공장이 빠져나가 대량 실직으로 지역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군산은 투자여건이나 절실함에서 광주보다 앞서있다. 여차하면 광주형 일자리가 군산형 일자리로 탈바꿈해 허공으로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자식들과 손주들의 일자리를 걱정하시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주체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