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18.’
지난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연일 울리는 폭염 경보 발령 알림서비스가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무더위를 이겨내면서, 리일천(57) 사진작가는 오직 ‘43518’만 생각한 채 사진기를 둘러메고 길을 걸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사람으로서, 우연찮게도 제주 4·3을 깊이 들여다 본 외부인으로서 무언가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작가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광주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리일천 사진작가가 다음달 23일까지 광주 갤러리 생각상자(관장 주홍·동구 소태동 577-2)에서 초대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43518-길 위의 기록’이다. 제주 4·3과 광주 5·18을 엮은 전시로, 작가가 길 위에서 바라본 두 사건의 면면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이 내걸린다.

5·18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는 리 작가는 아직까지도 당시의 참상을 기억한다고 전한다. 반면, 제주 4·3에 대해선 지난해 처음으로 열린 제주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계자로부터 4·3 관련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골목골목을 다녔고, 그때의 참상을 되짚어 보는 과정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리일천 作 ‘백비’/작가 제공

갤러리 생각상자 초대전은 함께 제주비엔날레에 참가했던 주홍 관장의 제안으로 열게 됐다. 지난해 제주비엔날레에서 리 작가가 참여한 전시 주제가 ‘The Road-43518AMMA道’였던 것에 착안해, 이번 전시 타이틀에도 ‘43518’을 사용했다.

전시에선 266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가벽 앞면에는 5·18관련 사진이, 뒷면에는 제주 4·3관련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어 관람자의 시선을 압도한다.

1980년 5월 윤상원, 박기순, 박관현 열사가 모이고 ‘투사회보’를 제작했던 광주 서구 광천동 시민아파트부터 윤상원 열사가 마지막으로 바라봤다는 옛 도청 창문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들불 야학’이 열렸던 대건안드레아 교육관,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민주평화교류원 임시 개방 행사 때 공개했던 전시 콘텐츠 ‘열흘간의 나비떼’까지 광주 5·18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또한 숙연한 제주 4·3평화공원, 기념관 내에 설치된 ‘백비’, 아이를 감싼 채 죽임을 당한 어머니의 모습을 조각으로 승화한 ‘어떤 피에타’ 등 다양한 각도로 담아낸 4·3 관련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상복 그림이 새겨진 4·3평화공원 행불자 추모비에 햇빛이 비친 장면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포착하고, ‘귀천’이라 이름붙인 작품이 인상적이다.

리일천 作 ‘어떤 피에타’

전시 개막에 앞서 리일천 작가는 “제주 4·3과 광주 5·18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할 아픈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전시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 관람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전시 문의 010-2609-8845)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