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소원이 하나 있다면, 북에 있는 아내와 딸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6일 광주 남구 진월동 평강교회 1층 카페에서 만난 김찬영(83) 원로목사는 4·27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웃음꽃을 피우면서도 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김 목사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한편으론 세월이 많이 흘러서 ‘자신을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서기 때문이다.

광주평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 목사는 기자와 대화 도중 눈을 감은 채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떠올렸다.

김 목사의 부친은 당시 금광업에 종사해, 동네에선 소문난 부자였다. 더구나 김 목사는 가정에서 하나 뿐인 외동아들로 태어나 애지중지하게 모든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 김 목사는 늠름한 군인이 되고 싶었다. 이어 김 목사는 17살이 되던 해 그토록 바라던 군인이 됐고, 군에서도 인정을 받아 포병 중대장까지 역임했다.

김 목사는 “군에서 인정받은 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 딸도 2명 낳고, 행복한 삶을 보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둘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목사는 인민군 중앙당으로부터 “정보원 신분으로 남한에 내려가 간첩 지원 활동을 하라”고 지령을 받게 됐다.

사실상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라는 말이었다.

김 목사는 “남한서 조금만 버티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 생각으로 정보원 활동을 했지만, 얼마 못가 붙잡혀 교도소에서 15년간 수감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후 세상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 목사는 “사실상 북한에서도 버림 받은 셈이다. 그때 나를 받아준 곳이 광주 동명교회였다”며 “교회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고, 신앙생활도 너무 즐거워 목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생겼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어 그는 “목사가 된 후 현 아내도 만나 재혼을 했고, 아들까지 얻게 됐다”면서 “이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것도 꿈만 같고 축복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 목사는 행복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북에 남겨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특히 “헤어질 당시 젖먹이였던 아이들과 아내 소식이 너무 궁금하다”면서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많은 기대와 바람을 나타냈다.

김 목사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봤을 때 ‘나는 전쟁 피난민이 아니라 해당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용기를 내 앞으론 이산가족 상봉자를 모집하면 꼭 신청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 목사는 “이산가족 상봉, 나아가 통일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내 고향인 평안북도 희천군 북면 양지리에 제 2의 평강교회를 짓고 싶다”며 “고향 사람들과 함께 신앙활동을 즐기는 것이 꿈이다”고 밝혔다.

한편,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80세 이상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3만7천198명으로 전체 생존자 중 64.2%를 차지한다. 또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1천531명 중 7만3천611명(56%)이 사망했다./김동수 기자 kds6400@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