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 오동꽃 필 때 수필 이민주
- 재생 준비중
2018. 03. 26(월) 19:32 가+가-
창문 너머엔 온통 푸른 세상이다.
하늘에는 하얀 꽃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무엇을 사랑할까? 보들레르처럼 나도 구름을 사랑한지도 모르겠다.
“오동꽃 피었지?”
쇠약한 몸과는 달리 어머니의 음성은 맑다. 하기야 어머닌 목소리만큼은 젊었을 때부터 맑고 투명했다. 조단조단 이야기를 하면 참 듣기가 편안하고 좋았다. 대답대신 환자복 위에 베이지색 옷을 입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부쩍 검버섯이 양 볼에 자라 있다. 나는 손바닥으로 움푹 패인 볼을 쓰다듬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차갑다. 올 봄부터는 화장실 출입이 어려워 간병인을 붙여 드렸다. 아무리 간병인이 잘 해도 어디 자식만 하겠는가. 얼마나 사실까. 어머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데.
올해 92세인 어머니는 2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혼자서 건강하게 사셨는데 화장실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 치매증상이 나타났다. 혼자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족회의 결과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중 누군가 당신을 모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셨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내비쳤다. 급기야 시골집으로 돌아가 혼자 살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모시겠다고 하는 자식이 없었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말없이 구두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달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말을 못한 내가 너무 미울 뿐이었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하지만 명퇴를 한 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 차마 우리 집으로 가시자는 말을 못했다.
어머니는 유난히 오동꽃을 좋아했다. 작은 꽃잎들이 오종종한 오동꽃은 자세히 보면 참 귀엽고 예쁘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나도 오동꽃을 좋아한다. 5월이면 광주 근교를 돌아서라도 오동꽃을 봐야 속이 시원했다.
오동꽃을 좋아해서 그럴까? 어머니는 오동색 한복을 즐겨 입었다. 어렸을 적 기억을 헤집어보면 화전놀이 갈 땐 꼭 오동색 한복을 입었다. 흰 고무신 버선발에 보라색 한복은 잘 어울렸다. 피부가 하해서 얼굴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어머니 모습은 어린 날 나의 로망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한복을 입은 뒤태가 예뻤다. 거추장스럽지 않게 치맛자락을 걷어 쥔 손 매무새도 고왔다. 나도 한복을 입으면 저런 모양새로 치맛자락을 잡아야지 라고 생각을 했다.
10살 쯤 되었을까? 어머니와 초파일날 절에 가는 길이었다. 오동색 한복을 곱게 입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다보니 보랏빛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무슨 꽃이냐고 묻는 내게 어머니가 대답을 했다.
“오동꽃이란다.”
그 절에 갈 때마다 나는 알면서도 꽃이름을 물었다. 오동꽃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신이 났다. 어머니가 유식하고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꽃이름 발음도 정감이 가고 소박해서 좋았다. 어머니에겐 앳된 처녀 시절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오동꽃에 어떤 그리움이 묻어 있을까. 어머니와의 정겹던 유년의 한 때가 떠올라 나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이젠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앞으로 오동꽃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언니와 비어있는 시골 친정집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예쁜 기와집이 어느덧 폐가로 변했다. 마당엔 잡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토방 앞에 채송화며 담장 밑의 꽃들이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격자무늬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연노란 장판이 정겹던 안방은 뿌연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골집에 온 목적은 어머니의 한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오동색 한복은 몇 번 입지 않은 새 옷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오동색 한복을 입혀 달라고 늘 말해왔다. 최근 들어 부쩍 그 옷을 가져오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저고리 끝동과 치마엔 작고 하얀 꽃잎의 수가 놓여 있었다. 치마가 한 폭의 오동꽃 같았다.
지금 어머니의 침대 머리엔 오동색 한복이 보따리에 곱게 싸여 있다. 심심할 때마다 옷 보따리를 풀어 보신다는 간호사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인생의 덧없음에 쓸쓸할 뿐이다. 오동꽃이 필 때면 나도 그리움 하나 달고 살 것 같다.
<약력>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석사), ‘수필과 비평’수필 신인상,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 광주문인협회 편집국장
하늘에는 하얀 꽃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무엇을 사랑할까? 보들레르처럼 나도 구름을 사랑한지도 모르겠다.
“오동꽃 피었지?”
쇠약한 몸과는 달리 어머니의 음성은 맑다. 하기야 어머닌 목소리만큼은 젊었을 때부터 맑고 투명했다. 조단조단 이야기를 하면 참 듣기가 편안하고 좋았다. 대답대신 환자복 위에 베이지색 옷을 입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부쩍 검버섯이 양 볼에 자라 있다. 나는 손바닥으로 움푹 패인 볼을 쓰다듬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차갑다. 올 봄부터는 화장실 출입이 어려워 간병인을 붙여 드렸다. 아무리 간병인이 잘 해도 어디 자식만 하겠는가. 얼마나 사실까. 어머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데.
혼자서 건강하게 사셨는데 화장실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 치매증상이 나타났다. 혼자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족회의 결과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었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중 누군가 당신을 모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셨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내비쳤다. 급기야 시골집으로 돌아가 혼자 살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모시겠다고 하는 자식이 없었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말없이 구두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달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말을 못한 내가 너무 미울 뿐이었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하지만 명퇴를 한 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 차마 우리 집으로 가시자는 말을 못했다.
어머니는 유난히 오동꽃을 좋아했다. 작은 꽃잎들이 오종종한 오동꽃은 자세히 보면 참 귀엽고 예쁘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나도 오동꽃을 좋아한다. 5월이면 광주 근교를 돌아서라도 오동꽃을 봐야 속이 시원했다.
오동꽃을 좋아해서 그럴까? 어머니는 오동색 한복을 즐겨 입었다. 어렸을 적 기억을 헤집어보면 화전놀이 갈 땐 꼭 오동색 한복을 입었다. 흰 고무신 버선발에 보라색 한복은 잘 어울렸다. 피부가 하해서 얼굴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어머니 모습은 어린 날 나의 로망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한복을 입은 뒤태가 예뻤다. 거추장스럽지 않게 치맛자락을 걷어 쥔 손 매무새도 고왔다. 나도 한복을 입으면 저런 모양새로 치맛자락을 잡아야지 라고 생각을 했다.
10살 쯤 되었을까? 어머니와 초파일날 절에 가는 길이었다. 오동색 한복을 곱게 입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다보니 보랏빛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무슨 꽃이냐고 묻는 내게 어머니가 대답을 했다.
“오동꽃이란다.”
그 절에 갈 때마다 나는 알면서도 꽃이름을 물었다. 오동꽃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신이 났다. 어머니가 유식하고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꽃이름 발음도 정감이 가고 소박해서 좋았다. 어머니에겐 앳된 처녀 시절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오동꽃에 어떤 그리움이 묻어 있을까. 어머니와의 정겹던 유년의 한 때가 떠올라 나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이젠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앞으로 오동꽃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언니와 비어있는 시골 친정집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예쁜 기와집이 어느덧 폐가로 변했다. 마당엔 잡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토방 앞에 채송화며 담장 밑의 꽃들이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격자무늬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연노란 장판이 정겹던 안방은 뿌연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골집에 온 목적은 어머니의 한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 오동색 한복은 몇 번 입지 않은 새 옷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오동색 한복을 입혀 달라고 늘 말해왔다. 최근 들어 부쩍 그 옷을 가져오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저고리 끝동과 치마엔 작고 하얀 꽃잎의 수가 놓여 있었다. 치마가 한 폭의 오동꽃 같았다.
지금 어머니의 침대 머리엔 오동색 한복이 보따리에 곱게 싸여 있다. 심심할 때마다 옷 보따리를 풀어 보신다는 간호사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인생의 덧없음에 쓸쓸할 뿐이다. 오동꽃이 필 때면 나도 그리움 하나 달고 살 것 같다.
<약력>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석사), ‘수필과 비평’수필 신인상,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 광주문인협회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