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낮이 끝나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친구들과 더 많이 놀 수 없으니까요. 날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면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낮이 왜 끝나야 하냐고? 그래야 밤이 올 수 있거든. 저길 보렴, 밤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지?” 엄마가 창밖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했어요. 저기 배나무 뒤,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희미한 은빛 달이 보였어요. “밤은 달과 별, 그리고 어둠과 함께 너를 위해 꿈을 준비하고 있단다.” 엄마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요. 샬로트 졸로토의 서정적인 글과 스테파노 비탈레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를 만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궁금한 것도 많고, 화날 일도 많았던 어린 시절, 낮은 왜 그렇게 빨리도 지나가는지. “밤은 싫어. 캄캄한 밤은 싫어. 없어져라, 얍!” 낮이 끝나고 밤이 찾아 올 때마다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웠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낮만 있고, 친구들과 놀 수도 없고 잠만 쿨쿨 자야 하는 캄캄한 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햇살 가득 낮이 끝나고 캄캄한 밤이 오면, 특별히 신나는 일도 없어져 버린 시간들이 어둠처럼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엄마가 되셨습니다.”

첫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햇살 가득 낮이 끝나고, 밤으로 향하는 노을이 되는 것 같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아이의 탄생이 참으로 신비롭고 감사했지만, 나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앞으로의 삶은 온전한 내가 아닌, 엄마라는 것, 엄마가 되어, 엄마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에 자꾸만 어둠이 찾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참 이상해요, 한 없이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제가 엄청 많이 기다렸던 아이잖아요. 그런데도 왜 기쁘기만 한 게 아닐까요.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마음이 조금 무거워요. 제가 이제 없어져 버린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제가 아니잖아요. 엄마잖아요. 이제부터는 제가 아니라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해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요.”

얼마 전, 첫 아이를 출산한 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랬노라고, 아마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느끼는 감정일거라는 말에, 조금은 안도하는 지인의 모습에 또 다시 <바람이 멈출 때> 그림 책 속 아이와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나뭇잎은 단풍이 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땅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잎이 나도록 도와주지.” 아이의 말에 엄마가 대답했어요. “그렇지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끝나잖아요. 그럼 끝나는 게 있는 거잖아요?” 아이가 말했어요. “그래. 그렇지만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시작되잖니?” 엄마가 말했어요. “겨울이 끝나면요…?” 아이가 물었어요. “눈이 녹고, 새들이 돌아와 봄이 시작되지.” 엄마가 말했어요. 아이는 생긋이 웃었어요. “정말 이 세상에 끝나는 건 없네요.”

벌써,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푸르른 하늘은 잿빛이 되었고, 길가엔 낙엽이 수북하다. 하지만 그래, 끝이 아니다. 낮이 끝나면 밤이 오고, 가을이 끝나면 겨울이 시작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의 움직임은 소멸이 아닌 또 다른 것들을 향한 시작이다. “세상 하나, 하나의 움직임과 모습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모습은 또 다른 그 무언가를 향한 시작이다. 힘들고 어렵고 어두컴컴할수록, 눈부시게 환한 햇살을 향한 몸짓이다. 푸르른 꿈이다. 우리가 살아내야 할 세상에 대한 든든한 버팀목이며 원동력이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엄마도 되고 아내도 되는 것처럼. 아내이며 엄마만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이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