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 부처가 예외 없이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해 정책 추진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장 야권의 반대가 극심한 일부 법안에 대해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노동개혁을 완수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던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당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노동개혁을 위해 필요한 법안 처리와 관련해 야권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주무부처 ‘당혹’ 역력

노동개혁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여소야대 상황을 맞아 노동개혁을 어떻게 지속해서 추진할지 고민이 크다. 무엇보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파견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통과가 관건이다. 정부는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회가 여소야대로 개편되면서 경제 활성화, 금융개혁 차원에서 추진해온 주요 정부 입법안들의 통과도 험난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기재부에서는 당장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이 걸린다. 정부는 서비스산업을 새로운 일자리 창출원이자 경제 성장 동력으로 보고 이 산업을 위해 세제·금융 제도 혜택을 주는 서비스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서비스법이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고 의료 민영화를 조장한다며 반대해왔다.

교육부는 교육 사안이 여야·이념에 따라서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박근혜 정부 교육개혁 정책의 핵심인 ‘대학구조개혁법’의 경우 2013년 10월과 지난해 10월 각각 새누리당 의원 입법으로 발의가 됐지만 아직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 편성을 의무화한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법’ 역시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자동 폐기 가능성이 큰 만큼 20대 국회에서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모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처리가 불투명하다.

서비스법, 누리과정도 시각차 커

이처럼 총선에 나타난 민심의 변화와 관련, 정부 각 부처의 긴장감은 극도로 높은 상태이지만, 정작 청와대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굳이 이런 표현까지 쓰고 싶지는 않지만, 민심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느낌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필자는 벌써 수년째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선거가 끝나면 예외 없이 어떤 긴장감이 있었으나, 현재는 솔직히 그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약칭 대수비)는 그런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총선에 나타난 국민들의 민심에 대해 대통령이 과거와는 다른 진정성으로 무엇인가를 언급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총선 직후 단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놓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터였다.

이날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선거결과는 민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드라이했다. 잘못된 부분은 없지만, 그 뿐이었다. 총선 관련 입장이 2줄에서 8줄로 늘어난 것 외에는 그 어떤 감동이나 진정성을 담은 사과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평소 박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뤄볼 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발언의 양도 많고 동원하는 단어도 많았지만, 이날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금 민심의 준엄한 심판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4·13 총선의 민심은 반성하란 것이다”며 “박근혜 대통령부터 독단과 독주 대신 대화와 협력으로 근본적 국정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대수비’ 발언, 원론에 그쳐

박 대통령의 책임론을 언급하는 것은 야당 인사 뿐 아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 참패의 이유에 대해 “우리가 민주화를 이룬지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정부·여당에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보다 못한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게 참패의 원인”이라며 “지도자가 권력자가 아니라 책임자가 될 때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며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여야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박 대통령의 독주, 독단을 언급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박근혜정부의 민주적 가치 훼손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영남권에서는 애정이 담긴 우려의 방식으로, 호남권에서는 냉정하게 비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 박 대통령에 대한 각 지역민들의 민심이반은 많건, 적건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 /jski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