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도입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미련 없이 사임했던 진영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진 의원은 이날 “김종인 대표의 생각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과 시대성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더민주가 양 극단의 편향성에서 합리적인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자신의 입당 이유를 밝혔다.

정가에서는 진영 의원의 ‘월경’(越境)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장 청와대와 여권은 진 의원이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었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선거철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정객이 늘어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진보·보수 넘나드는 정객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대표적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인 그는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3차례 지낸 정통 보수 인사였다. 이후 2004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변신하더니, 2012년 대선 에선 다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

야권에서 여권으로 넘어간 인물도 있다.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된 강봉균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16-18대 국회에서 옛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내리 3선 의원을 지낸 정통 야권 인사였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국민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합류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도 정당에 관한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당 풍토 아래에서 이들이 자유롭게 여야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해당 개개인이 대변하는 어떤 철학이나, 정책 때문이다. 일신의 영달 때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월경이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나름의 논리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말이다.

캇즈와 마이어라는 정치학자는 역사적 발전과정에 따라 유럽 정당의 유형을 간부정당, 대중정당, 캐치올정당 등으로 분류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에서 간부정당이, 대중 민주주의 단계에서는 대중정당이, 산업사회의 고도화와 복지국가 이념이 보편화된 단계에서 캐치올정당(catchall party)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대중정당은 보통선거제 확립 이후 발전한 20세기 정당의 표준형이라 할 수 있다. 대중정당은 당원의 자격과 권리의무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다. 당원은 정당의 각종 집회에 참석하고 소정의 당비를 납부해야 할 의무를 진다.

승리에 목마른 캐치올정당

캐치올정당은 오로지 그 관심이 득표와 선거승리에 있는 정당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이익집단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와 보수 같은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남의 전략도, 남의 사람도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정당인 것이다.

캐치올정당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기 위해 교조적으로 훈련된 결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을 최우선으로 생각함으로써 여론조사, TV정치광고와 같은 홍보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서울 마포을에 ‘막말’ 강성 정청래 의원이 탈락하고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전략공천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김 대표 체제 하에서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연성인 사람들이 86 운동권 그룹을 대체해 중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리사욕’ 대신 진정성 보여야

세상에 회자되는 말 중 ‘둥근 사각형’이나 ‘쇠로 만든 나무’라는 말이 있다. 시인이나 철학자의 이야기면 몰라도, 현실의 영역에서는 말이 안 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단순한 문장이면 이처럼 쉽게 참과 거짓을 확인할 수 있으나, 복잡하고 난해한 정당의 총선 전략이 ‘둥근 사각형’류의 비논리적 결합으로 이뤄지면 전문지식을 갖고 오랜 시간 파악해야만 참과 거짓을 구분해 낼 수 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선거의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정치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파격적인 정무적 승부수를 계속 던지고 있다. 김 대표는 급기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세간의 비판이 일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서, ‘싫으면 마라’ 식의 배짱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진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김 대표 같은 정치인들의 주장이 ‘둥근 사각형’이나 ‘쇠로 만든 나무’로 오해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리사욕을 완전히 내려놓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진정성은 김 대표의 말만 믿고 많은 것을 양보했던 더민주 당원이나 지지자들의 반감을 달래줄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jski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