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신문 정치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최근의 정치상황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성 공천자를 포함한 광주지역의 민주통합당 공천 후보들이 통합진보당 후보의 손을 잡고 이른바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몇몇 특정 인물들을 그 자리에 세우기 위해 그동안 민주당이 보였던 갈지(之)자 행보 때문이 아니라, 이 사진으로 인해 문득 한국 정치의 본질과 속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 사진 속에는 한 때 “중앙당에서 광주의 특정 지역을 일방적으로 여성 전략공천지역으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입에 거품을 물었던 인사도 있고, “단지 표를 얻기 위해 정강과 정책이 확연히 다른 정당과 힘을 합친다는 것은 일종의 국민기만 행위”라고 목의 핏대를 세웠던 분도 포함돼 있었다.

정치는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기자의 경험상 대략 다음의 세 가지는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첫째, 내편과 상대편을 나눈다. 둘째, 내편에게 이로운 일을 하거나 상대편에게 해로운 일을 한다. 셋째, 내편과 상대편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정치라는 숲속에 발을 딛은 나그네는 결코 혼자서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의 숲속에서는 누구라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다양한 인생의 영역에서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를 만난다면 그는 동지, 벗, 친구, 선후배 등으로 호칭될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 우리는 정치의 현장에서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정치인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다른 영역과 선명하게 차별되는 점은 세 번째의 특징 때문이다. 즉 동지, 벗, 친구, 선후배가 언제든 제거해야 할 적, 끌어내려야 할 원수, 뒤에서 칼을 꽂는 배신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비정함에 대해서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이미 간파한바 있다. 그는 자신의 저술 군주론을 통해 “군주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고 설파했다. 군주건 국회의원이건 정치의 본질은 동일하다.

최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광주·전남 지역 곳곳의 선거판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은 쉽게 입증된다. 정치면의 그 사진도 한국 정치의 비정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결국 ‘야권연대’라는, 그동안 가깝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가까워질 것 같지도 않은 이질적 정치집단간의 결합은 그 어떤 명분을 달고 있더라도 나라와 지역의 발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세력의 집권 또는 헤게모니 획득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란 점을 부인키 어렵다.

정치인이란, 표를 얻기 위해서는 온갖 낯간지러운 행태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유권자는 더욱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단일후보’니, ‘전략공천’이니 하는 정치공학적 수사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 호남의 미래를 맡겨도 될 재목은 누구인지,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꾼은 누구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정치는 끊임없이 유권자들을 속이면서 성장하는 존재이다. 정치에게 사기를 안 당하려면 유권자가 똑똑해 질 수밖에 없다.

/서울취재본부 국장 jski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