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을 앞둔 요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 아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장수는 누구라도 자신이 왜 출전하는가에 대한 명분과 이유를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번 총선은 연말의 대선 전초전이란 점에서 정권교체에 보탬이 될 인물을 뽑아야 한다”, “정치권의 구태를 벗으려면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전문적 식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역발전을 가시적으로 견인할 수 있도록 예산을 많이 가져와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것이 전쟁의 법칙이고 보면, 각자의 참전 명분은 최종 승자가 됐을 때에만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무리 훌륭한 장수도 살아남지 못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광주·전남이라는 ‘전쟁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현역의원이건, 정치 신인이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이다. 특히 이번 주부터 광주·전남 공천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의 면접이 시작돼 선거전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4·11 총선’을 관전할 때 타 지역과 달리 광주·전남 유권자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도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에 나설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반드시 키워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공천심사위원회 활동이나 야권연대 논의를 볼 때, ‘친노인사’인 한명숙 문성근 등 현재의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생각하는 호남 정치인과 광주·전남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느끼는 호남 정치인은 확실한 개념차가 존재한다.

‘친노인사’들이 보는 호남 정치인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가깝다. 누구를 공천하더라도 쉽게(?) 당선되고, 혹시 공천에서 배제했더라도 무소속으로 당선돼 다시 민주당에 복당하는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차기 대권을 꿈꾸는 경기·경상·충청 정치인들에게 전라 정치인은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정권재창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표를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호남에 매달리다가, 집권하고 나면 ‘너 누군데?’ 식의 반응을 보였던 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최근 ‘친노인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민주당을 보고 있노라면 또 다시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초선이고 재선이고 또는 그 이상이고 상관없이 그동안 우리가 선택했던 호남 정치인들을 단순히 ‘원 오브 뎀’으로 평가절하 하는 일부의 시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서울에서 볼 때는 모두 고만고만한 호남 정치인일지 몰라도, 그들 중에는 무조건 도매금으로 넘어가서는 안 될 어떤 차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어떤 희망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서울이라는 권위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고, 지역의 시각으로 호남 정치인을 바라볼 때 우리는 ‘DJ(김대중 대통령)’라는 기억과 조우하게 된다. 그에 대한 추억은 “왜 우리는 DJ를 이을 정치지도자를 키우지 못했나?”라는 자괴감과 연결된다. 이 자괴감은 다시 “버릴 것은 버리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는 자문을 던지게 만든다.

유권자들에게는 국회의원을 교체할 수 있는 권리만 주어진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인물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의무도 동시에 주어져 있다.

타 지역 대권주자의 집권플랜을 위해 소모되는 ‘장치’가 아니라 스스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는 호남의 인물을 어떻게 키워내고 지킬 것인가? 곧 시작될 민주당 광주·전남 국회의원 공천심사를 앞두고 호남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서울취재본부 국장 jskim@kjdaily.com